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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o? Newtro!

버려진 40번째 공장 다시 가동하다

때론 오래된 것이 더 새롭고 아름답다.
인천은 과거와 미래가 조화로운 도시, 최초와 최고가 공존하는 도시다.
시간의 흔적을 보듬어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시킨 공간으로 들어가 본다.
서구 가좌동 옛 ‘코스모화학’ 공장 지구.
사람이 모두 떠나고 기계소리가 사라진 공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안엔 수많은 노동자들이 흘린 땀이 배어 있고,
기계 소리보다 더 큰 삶의 외침이 울려 퍼진다.

정경숙 본지 편집장 |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코스모화학 공장의 40번째 동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코스모 40’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파란 하늘에 걸린, 회색빛 공장 굴뚝.
인천을 지탱해 온
‘아름다운 땀’의 역사가 피어오른다.

공업도시, 인천

인천은 공업도시다. 1883년 개항 이후 작은 어촌에서 근대 도시로 몸집을 키웠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는 동구 만석동과 화수동 일대 갯벌을 메운 자리에 거대한 공장들이 들어섰다. 탐욕의 산물이었다. 광복 이후 1960년대 중반부터는 국가의 산업화 정책에 따라 중화학 공장을 중심으로 한 공단이 곳곳에 터를 잡았다. 그렇
게 인천은 공업도시가 됐다.
전국에서 노동자들이 꿈을 찾아 인천으로 왔다. 기계가 쉼 없이 돌아가고 공장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배고픈 시절, 인천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생명줄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인천이 거대한 공장 지구가 드리워진 노동자들의 도시라는 사실을, 불편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서구 가좌동 옛 ‘코스모화학’ 공장 지구. 코스모화학의 전신은 1968년 2월 역사를 시작한 한국지탄공업(주)이다. 1971년 6월 인천 공장을 준공한 후 한국티타늄공업(주)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2003년 현재의 이름을 얻었다. 40여 년 동안 힘차게 움직이던 공장은 2016년 6월 문을 닫고 울산으로 이전했다. 사람들이 떠나고 먼지 속에 침잠하던 폐허는 지난달 복합문화공간 ‘코스모 40’으로 다시 세상의 빛을 본다.

폐공장을 다시 힘차게 가동한, 코스모 프로젝트 팀의 심기보(좌), 성훈식(우) 씨.

거친 공단에 깃든 삶

“사업이 될지 안 될지를 떠나 먼저, 사라지는 건물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외국에는 전성기가 끝난 공업도시에 남겨진 공장을 문화시설로 재생한 성공 사례가 많아요. 한국에는 왜 그런 공간이 없을까, 생각하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코스모 40’을 기획한 성훈식(34)씨는, 제 기능을 잃고 남겨진 인천의 공장들을 근대유산으로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성 씨와 함께 코스모 40 프로젝트에 의기투합한 심기보(39) 씨는 이 일대와 인연이 각별하다. 그의 집안은 13대째 서구 가좌동에 뿌리를 굳게 내려왔다. 공장 지구 한편엔 300년 된 심 씨 가문의 고택이 온전히 남아 있다. 그만큼 감회가 깊다. “우리 가족의 생활 터전은 바로 공장 옆에 있었습니다. 매캐한 화학물질 냄새가 풍기는 이 일대는 매력적인 개발의 대상이 아니었지요. 그 덕에 살아남았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소외된 땅이었기에 속도가 앗아갈 뻔한 풍경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헐리기 직전의 문 닫은 화학공장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슬레이트로 마감한 외관은 누추해 곧 허물어질 것 같은데, 그 안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긴 세월을 버텨온 육중한 몸집의 단단한 공장 구조물. 마치 그 한가운데서 거대한 쇳덩이가 덜커덕 소리를 내며 움직일 것만 같았다. 40여 년간 쉬지 않고 땀을 쏟아내면서 일대 주민들을 먹여 살린 곳이다. 삶을 지탱해 온 역사의 흔적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전기를 가동해 공장을 움직이던 기계. 이 또한 귀한 근대유산이다.(위) ‘옛것은 지키고, 새것은 더 새롭게.’ 코스모 40은 예전 공장 건물에 새로운 건축물을 중축한 형태다.(아래)
기억해야 할 노동의 역사

“이산화타이타늄을 생산하기 위해 만든 기능적인 공간이에요. 한때 이안을 가득 채운 기계들이 맞물려 움직이도록 설계됐지요. ‘옛것은 지키고, 새것은 더 새롭게.’ 코스모 40의 건축 모토다. 이곳의 건축 방식은 예전 공장 건물에 새로운 건축물을 증축한 형태다. 대신 공장 건물과 남아 있던 구조물은 고스란히 살리고, 보조 기둥을 세워 새 건물이 옛 건물에 닿지 않도록 배려했다. 반짝이는 유리에 둘러싸인 현대식 건물과 투박하고 거친 공장의 조화가 묘하게 마음을 잡아끈다. 과거와 현재가 극명하게 나뉘지만, 공간과 공간은 하나로 이어진다.
신축 로비에 들어서면 공장 안이 훤히 내다보인다. 새로운 공간에 있는데 자신도 모르게 과거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공장 건물 자체가 갖는 확장성도 크다. 1~3층 공간이 하나로 이어지고, 그 위에 올라서면 또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지금 공간은 제 기능을 잃고 텅 비었지만, 대신 독특한 아름다움을 창조해 냈어요.” 심 씨는 이곳이 복합문화공간의 의미를 넘은 ‘대공간’으로, 문화예술 분야를 뛰어넘은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길 바란다.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가 밑그림을 그렸다면 색을 칠하는 건 문화예술가와 기획자, 주민 여러분의 몫이에요.”
산업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쉼 없이 돌아가던 인천의 많은 공장이, 지금 가동을 멈추었다. 도시 재개발의 바람 속에 산업화 시대의 흔적이 하나둘 지워지고 있다. 공장이 사라진 자리에는 천편일률적인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세워지고 있다. 그 안에 주민들이 설 자리는 없다.
“우리는 ‘공장도시’라는 인천의 정체성을 애써 외면하고 부정해요. 하지만 인정하고 매만지면 인천의 자산으로 키울 수 있어요.” 심 씨의 집안은 300년 동안 흔들림 없이 공단 한복판을 지켜왔다. 인천을 지탱해온 ‘아름다운 땀’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공단 지대를 나서는 길, 가을하늘에 회색빛 연기를 내뿜는 공장 굴뚝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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