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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다른 시간 인천 내항

“내 피땀이 배어 있는, 저 축항”

“아침저녁 쇠사슬을 허리에 매고 축항 공사장으로 출역을 간다.

흙 지게를 등에 지고 10여 길 높은 사다리를 밟고 오르내린다.

불과 반 일 만에 어깨가 붓고 등창이 나고 발이 부어서 운신을 못하게 된다.”

백범 김구는 1910년 독립운동가 160명이 서간도에 무관학교를 설립하려고 자금을 모으다 검거된 ‘안악 사건’으로, 서울에서 옥살이를 하다 1914년 인천감리서로 이감된다. 이때 김구는 인천 내항 1부두인 축항 공사장에 끌려가

강제 노역에 시달린다. 그는 “힘들어서 바다에 떨어져 죽고 싶었으나, 그러면 같이 쇠사슬을 맨 죄수들도 함께

떨어지므로 할 수 없이 참고 또 참았다”라고 회고했다.

 

“저 축항에는 내 피와 땀이 배어 있다.”

김구는 광복 후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인천으로 달려갔다. 두 차례의 옥고와 고된 노역, 도망자의 삶.

하지만 낮은 데서 더 강해졌다. 청년 김창수가 민족 지사(志士) ‘백범 김구’로 다시 태어난 땅.

인천은 오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의미심장한 역사 지대’다.

 

정경숙 본지 편집장 |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손에 든 옛 사진은 백범 김구가 강제 노역을 했던 축항(현 인천 내항) 공사장의 모습이다. 일본 순사가 조선인 노동자들을 감시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뒤편으로 굴곡의 역사 속에서도 변함없는 월미산이 보인다. (사진 인천시 역사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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