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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인천 – ‘동구~중구 연결도로’ 민관 협의

아래는 길 위로는 자연과 사람이,
행복한 공존

하마터면 모든 게 사라질 뻔했다. 쇠뿔·배다리 마을 한가운데 너른 땅. 마을 사람도 동네 밖 사람도 넉넉히 품어주는 곳. ‘동구 송현동~중구 신흥동 간 연결도로’ 구간이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길은 배다리·쇠뿔 동네 한복판이 아닌, 땅 아래로 난다. 온전히 남겨진 땅 위론 사람과 자연, 문화가 어우러진 세상이 펼쳐진다. 시민이 원하는 대로.
사업 결정 20여 년, 공사 중단 8년 만의 결실이다.

정경숙 본지 편집장 │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속도가 앗아갈 뻔한, 풍경

느릿느릿, 오래된 것들이 나름의 이야기를 지키는 동네 쇠뿔·배다리. 그 한가운데 마을 사람도 동네 밖 사람도 넉넉히 품어주는 너른 공터가 있다. 언덕 위에 이름 모를 들꽃과 코스모스가 물결을 이룬다. 그 공간을 밀어내고 차가 씽씽 달리는 도로가 날 뻔했다. 이제 길은 그 아래로 난다. 한 동네가 두 동강이 나지 않아, 속도가 앗아갈 뻔한 풍경을 붙잡을 수 있어 고맙다.
깊어가는 가을, 이곳에서 지난달 19일 ‘쇠뿔마을 장마당축제’가 열렸다. 꽃밭에 천막을 치고, 막걸리 마시고, 부침개 해 먹고, 부녀회에서 만든 빨랫비누도 팔고 사고…. ‘우리 동네 문화축제’로 시가 지원하고 주민이 중심이 된 소박하고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행사를 기획한 정명섭(42) 활동가는 이 동네 토박이다. “군대 갔다 오니 친구들이 다 떠나고 없었어요. 길을 내기 위해 집을 허물어 이사 간 거지요. 찻길이 나는 걸 반대했어요. 당장 우리 아이들이 그 길을 건너서 학교를 가야 하고, 잊힐 지난 시간도 안타까웠습니다.” 사람도 집도 골목길도 사라졌지만, 땅을 남겨두어서 기억을 추억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다음 날 풀밭 위에선 작은 영화 상영회가 열렸다. 원래 쇠뿔마을 장마당축제에서 선보이려고 했다. 이 마을 주민인 경인방송의 안병진(43) PD는 지난여름 조점용(75) 미림극장 전 영사 기사와 올가을 영화를 상영하기로 약속했다. 바로 이 자리에서. 땅에는 코스모스가, 스크린에는 어르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해바라기’가 만발하다.
“차도는 지하로 나기로 결정됐고, 도로가 될 뻔했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를 두고 다양한 목소리가 있습니다. 합의점을 찾아가야지요. 복잡한 일은 잠시 접어두고 영화 한 편 함께 보자는 의미로 이번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쇠뿔마을 장마당축제(사진 제공 정명섭)
배다리 풀밭 위 작은 영화 상영회

그대로여서 고마운 동네

서로 오해하고 마음의 담을 쌓은 시간이 20여 년이다. 도로가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는데, 시는 주민에게 도로의 필요성만 강조하니 마음에 와닿기 어려웠다. ‘동구~중구 간 연결도로’는 ‘인천의 남북 축을 잇는 2.92km의 핵심 도로’다. 교통 여건을 개선해 사람과 물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원도심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착한’ 의도였다. 1999년 9월 사업을 결정하고 2001년 첫 삽을 떴다. ‘연수구(송도국제도시)~중구~동구~서구(청라국제도시)’ 4개 구간으로 2011년까지 대부분 준공됐다. 3구간 쇠뿔·배다리 지역만 남긴 채. ‘송림로~유동삼거리’ 380m 구간은 주민 반대에 부딪혀 8년째 공사가 중단됐었다. 동네 한가운데를 길이 뚫고 지나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마을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이 훼손될까 밤잠을 설쳤다.

쇠뿔·배다리는 개항 후 외국인들이 응봉산 자락에 자리 잡으면서 밀려온 사람들이 모여 이룬 동네다. 1907년엔 인천 최초의 공립보통학교 ‘창영초등학교’를 조선인의 손으로 세웠다. 성냥, 고무신 등을 만드는 공장에선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땀을 흘렸다. 1960, 1970년대에는 헌책방 거리로 유명했다. 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도 이 골목에서 헌책방을 했다. 그리고 지금, 여전히 건재한 아벨서점, 문화양조장 스페이스빔, 배다리 안내소 ‘나비날다 책방’…. 오래된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머물면서, 그 시절 추억은 빛바래지 않고 윤기를 더하고 있다. 인천 사람이라면 누구나 추억하고 소중히 여기는 이 동네를 ‘반드시’ 지켜야 했다.

20여 년 엉킨 실타래,
그 시작을 찾다

개발과 보존, 그 간극을 좁히고 공존하는 법을 찾아야 했다. 도로의 필요성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먼저였다. 지난 7월, 이종우 시 시민정책담당관은 무작정 쇠뿔마을에 방 한 칸을 얻어 들어갔다. 사는 이야기 들어드리고 텃밭 일을 도우며 주민과 마음의 거리를 좁혔다. 주민의 입장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 ‘소통’은 마주 서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볼 때, 민관이 함께 공동의 목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진정한 소통의 장이 마련됩니다.”
시와 동구의 관련 부서와 유관 기관이 한자리에서 머리를 맞대고, 처음부터 다시 답을 써 내려갔다. 주민에게 그 결과를 알리고 또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2019년 8월 21일, ‘동구 송현동~중구 신흥동 간 연결도로 문제 해결을 위한 제7차 민·관협의회’에서 시와 시민의 뜻이 모아졌다. 도로는 지상이 아닌 지하로 난다. 안전하게 시공하기 위해 주민감시단을 꾸리고, 매연과 소음은 최소화하기 위해 제한 속도를 50km로 설계하며 지하화한다. 지상 공간은 주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새 숨을 불어넣기로 했다. 사업 결정 20여 년, 공사 중단 8년 만의 결실이다.
그렇게 20년 엉킨 실타래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이제, 시민 뜻을 모아 하나하나 풀어갈 차례다. 조금 더디더라도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서로의 보폭과 호흡을 맞추며.

‘동구 송현동~중구 신흥동 간 연결도로’.
지상이 아닌 지하로 도로가 이어진다.

지하 차도 상부 부지에 대한
‘시민 목소리’

도시를 만드는 사람과 머무는 사람 모두 ‘공감’할 수 있어야, 도시는 비로소 생명을 얻습니다.
시민에게 ‘동구~중구 연결도로’ 지하 차도
그리고 상부 부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모든 목소리를 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응원부터 쓴소리, 곧은 소리까지, 계속 귀 기울이겠습니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 줄곧 살았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애정이 크다. 그만큼 사라진 골목에 대한 아쉬움도 많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도로가 지하로 나고 땅이 남겨져서 다행이다. 그 위엔 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 우리 동네엔 나이 든 어르신들이 많다. 그분들에겐 삶을 건강하게 영위할 수 있는 체육·문화·편의 시설을 갖춘 공간이 필요하다. 부지 한편엔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공원을 조성하길 바란다. 정명섭 활동가
창영초등학교를 나와 이 동네에서 자랐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어른들이 오래전부터 동네를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버티고 있었다. 새로운 세대를 위해 함께하고 싶다. 도로를 낸다는 결론은 이미 오래전에 났고, 그 사이 시와 주민, 주민과 주민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개발보다 보존이 우선이다. 윗세대가 잘못된 결정을 하면 소중한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도로 위 공간은 ‘모두 누릴 수 있는 공유지’가 되길 바란다 박성준(33) 카페 멀씨 대표
배다리 공유지에서 업사이클(Upgrade) 아트를 주제로 한 야외 전시 ‘페트(PET)’를 열었다. 생활 폐기물을 활용한 친환경 프로젝트인 만큼 자연 안에서 펼쳐져 더 의미 있었다. 주민이 100% 원하는 건 아니지만, 도로가 지상이 아닌 지하로 나는 건 잘된 일이다. 동네 한가운데 펼쳐진 녹지가 얼마나 소중한가. 살아난 공간을 주민이 주체적으로 꾸미길 바란다. 이호진(44) 전시기획자·사진가
도로가 지하로 난 건 환영한다. 하지만 지하 차도 출입구에 사는 마을 주민에 대한 배려와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 환경 평가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시민이 한마음으로 배다리 땅 위로 도로가 나는 걸 막아왔다. 배다리 주민뿐 아니라 주변 동네 주민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지상은 한정된 사람들만의 공간이 아닌, 모두에게 열린 진정한 의미의 공유지가 되길 바란다.장회숙 인천도시지원디자인연구소 소장
동구 주민이고 미림극장에서 35년 영사기를 돌렸다. 배다리 빈터에서 영화를 상영해 의미 있었다. 하루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코스모스가 잔뜩 핀 이 아름다운 공간이 뚝 안 잘리고 땅속으로 길이 나서 다행이다. 반대하는 주민도 있지만, 길을 내는 게 도시 발전을 위해선 필요하지 않겠는가.조점용(75) 미림극장 전 영사 기사
주민 편의 시설도 필요하겠지만, 공유지로서 가변성 있게 열어두면 좋겠다. 규정된 틀에 가두면 그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배다리 공유지에서 아이들과 자라는 풀을 관찰하고, 야외 전시를 즐기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었다. 이곳은 하나의 광장이다. 동네 주민과 다양한 문화 주체들이 자유롭게 활용하고,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청산별곡 ‘나비날다 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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