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내가 사랑하는 인천 – 작가 양진채

인천,
거기 있어줄래요?

소설가이다. 주안 신기촌, 옥련동 바닷가 근처, 용현동과 석남동을 거쳐 지금은 부평에 살고 있다.
인천의 곳곳을 눈여겨보며 깊이 사랑해 소설로 녹여내고 있다.

양진채

테마 소설집 <인천, 소설을 낳다> 2015ㅣ<검은 설탕의 시간> 2019ㅣ
<변사 기담> 2016ㅣ<달로 간 자전거> 2017ㅣ<푸른 유리 심장> 2012

싱싱한 굴에서는 바다 냄새가 난다. 이 굴 비린내는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인천 냄새이다. 만석동에 살던 이모는 굴을 깠다. 목장갑을 끼고, 굴 껍데기를 잡고, 조쇄로 벌리고, 탱글탱글한 굴을 꺼내는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양재기 안에는 굴이 점점 늘어났다. 이모는 옆에 쭈그려 앉아 구경하는 어린 내게, 이게 뭐라고 그렇게 넋을 놓고 본다냐, 하며 까던 굴을 내 입에 쏙 넣어주고는 했다. 그때 나는 몇 살쯤이었을까. 날름 받아먹은 굴에서는 쉽게 가 닿을 수 없는 저 바다의 깊고 푸른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그건 가 닿을 수 없는 아득한 곳의 이미지였다. 이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나보다 두 살 많던 사촌 언니는, 뜻도 모르며 나훈아의 ‘서로가 헤어지면 모두가 가려워서 울 테니까요’ 하고 목청을 높이는 나를 비웃었다. 나중에야 ‘가려워서’와 ‘괴로워서’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동네 공터에는 굴 껍데기가 산처럼 쌓여 있었지만 냄새는 매번 달랐다. 굴 껍데기를 지나고 나온 바람도 달랐다. 아이들은 굴 껍데기 썩는 냄새를 맡으며 그 위에 올라가서 놀았다. 이 기억은 내 소설 <변사 기담>에서, 묘화가 굴 껍데기에서 넘어져 손을 베이고, 피를 흘리며 울고, 아이들은 미친개가 쫓아온다고 놀리는 장면에 녹아 있다. 묘화의 내면 상처가 드러나고, 기담이 묘화를 기억하게 된 순간이기도 하다. 나는 어느 작가와의 대화 자리에서 굴 비린내야말로 가장 바다와 닮았고 그래서 인천의 냄새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굴 비린내가 냄새로 기억되는 인천이라면 장면으로 기억되는 인천은 단편 소설 <검은 설탕의 시간>에 나오는 아버지의 바지에서 쏟아지던 검은 설탕이다. 부두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링으로 조인 바지 밑단을 풀어 갑판장에서 쓸어 왔을 검은 설탕을 쏟아내고, 어머니는 그걸 보자기에 받았다. 검은 설탕에 물을 부어 떠오르는 부유물을 재빨리 버린 다음에 설탕물로 쓸 수 있었다.
어린 날, 까자마자 바로 입으로 들어오던 싱싱한 굴이나 부두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숨겨 온 검은 설탕을 풀어내던 기억은 내 소설로 고스란히 남았고, 이 경험은 내가 인천에 살지 않았다면 도저히 쓸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변사 기담>을 출간했을 때, 여러 사람들이 작가의 말에 쓴 ‘인천에 진 빚을 갚기 위해서’라는 말뜻을 물었다. 문학을 알기 전까지, 인천을 애정으로 들여다보기 전까지 인천은 그저 칙칙한 잿빛 도시에 불과했다. 가난하고, 이쁘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않은 나와 닮은 도시. 그래서 외면하고 싶던 도시였다. 그 미안한 마음이 빚이었다.

 

문학을 하면서 내가 발을 딛고 선 인천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인천은 그 어떤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문화적 자양분을 축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자양분이 숨겨진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금씩 꺼내 소설로 썼다.
<변사 기담>의 제물포구락부, 자유공원, 월미포격사건, 애관극장, 북성포구, 배다리 등이 개항기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변사인 기담의 삶을 풍성하게 했다. 최근에 발간한 소설집 <검은 설탕의 시간>에 수록된 여러 단편도 마찬가지였다. 소설 <허니문 카>는 여름이면 송도유원지에서 놀았던 기억이, 송도유원지 마지막 날의 헌사처럼 소설을 쓰게 했다. 송현동에서 살았던 유동현 시립박물관장님이 들려준 수문통 얘기는 ‘부들 사이’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배경으로 다시 태어났다. 중편 소설 ‘플러싱의 숨 쉬는 돌’에는 인천5·3민주항쟁 한가운데 있던 기억이 소환되었다. 북성포구는 <변사 기담>을 비롯해 <패루 위의 고래> <북쪽 별을 찾아서> 등에 등장한다. 그 외에도 여러 편의 소설에 어떤 형태로든 인천이 조금씩 등장한다.

나는 가능하다면 인천을 내 소설에 버무리려 했다. 그리고 이 인천이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다른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게 변해버리는 일만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인천다운’ 가치는 무분별한 개발에서 그럴듯한 무언가를 세워놓고 찾을 수 없다.
이렇게 인천의 보물을 하나씩 꺼내서 쓰고 있는데, 미추홀도서관을 비롯해 몇 곳의 도서관에서 나를 ‘2019 인천 문학 작가’로 선정하고 도서관 내에 부스를 만들어주었다. 인천에 점점 더 많은 빚을 진다. 빚을 지면 어떻게든 갚을 생각을 해야 하는데 뻔뻔하게도 빚을 갚기는커녕 대출까지 생각한다. 그래도 인천은 내가 인천 사람이라는 그 하나만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든 것을 내어준다. 나는 변명하듯 웅얼거린다.

사진 김성환 – 만석동 굴막과 만석부두의 기록
“인천이라 다행이고 인천이어서 고마워. 늘 거기 있어줄 거지?”
error: 무단복사 사용을 금지합니다.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