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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공간 ⑦ 자유공원 서핑 가게 ‘서프코드’

‘동인천 프란시스코’
서퍼들의 도전

공간은 곧 사람을 의미한다. 숨 쉬고 머무는 자리마다 살아온 시간과 삶을 대하는 태도, 생각이 스며든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아주 사적인 공간’에 들어가, 그 안에 숨겨진 또 다른 인천을 본다. 이번 호에는 ‘동인천프란시스코’ 자유공원의 서핑 가게 ‘서프코드(Surfcode)’ 사람들을 만났다. 7년 전 배다리에서 시작, 자유공원 응봉산 꼭대기에서 무르익은 그들의 이야기는 서구 공장지대에서 다시 시작된다.

 

정경숙 본지 편집장 |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파도가 거칠수록,
더 세차게

서프코드 내 작업실에서, 김인섭, 김선홍, 황은민(왼쪽부터) 씨.
핸드 셰이핑 중인 황은민 셰이퍼,
그동안 손으로 깎은 서프보드만 400여 개다.
보드의 밸런스를 체크하는 김선홍 이사.

들어오면 망한다던,
자유공원 ‘명당’

“여기가 자유공원 일대 최고의 명당인데, 정작 사람들은 몰라요. 안타까워.” 현 인천시립박물관장인 유동현 <굿모닝인천> 전 편집장이 자유공원을 산책하다 응봉산 꼭대기에 비어 있는 한 건물을 보고 말했다. 자그마치 7, 8년 전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이 일대는 지금보다 더 한적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타 오케스트라 단장 리여석 선생이 운영하는 ‘파랑돌’ 카페 같은 명소가 숨어 있었지만, 대부분의 집이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여기 오면 다들 망하는데, 뭣 하러 왔어?” 6년 전, 응봉산 꼭대기 그 ‘명당’ 자리에 동인천 출신 젊은이들이 터를 잡았을 때, 동네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고 서핑(Surfing) 가게 ‘서프코드(Surfcode)’를 냈다. 바다가 아닌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서핑 가게라. 뜬금없지만, 그들에겐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냥 이 동네가 좋았어요.” 그저 나고 자란 동네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서프코드의 김인섭(35), 김선홍(34), 황은민(35) 씨는 한마을 친구, 동생 사이로 동인천 일대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김선홍 이사는 말했다. “우리가 어릴 적 놀던 동네예요. 다른 세상이 궁금해서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돌아왔지요. 자연스러운 이끌림이었어요”. 인천 사람들조차 찾지 않는 잊힌 골목이, 어떤 이들에겐 추억이 일상으로 흐르는 ‘우리 동네’다.

보드에 도색을 하던 흔적도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미국에선 팝아트의 소재로 사용하기도 한다.
보드에 광택을 내는 파란색 레진.
서퍼들 사이에선 ‘서핑의 상징’으로 통한다.

원도심이기에, 더 ‘쿨’한

2013년 겨울, 처음 자유공원에 자리 잡을 때는 힘들었다. 서핑에 대한 열정 빼고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난방을 할 여력조차 없어 공원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난로를 땠다. 돈이 필요했다. 남동공단에서 볼트와 나사를 조이면서 번 기름때 묻은 돈으로 먹고살고, 내부 공간을 하나하나 채워갔다. 해가 지면 그들만의 아지트에 틀어박혀 밤새 꿈을 펼쳤다. 후미진 작업실에 있을지언정 마음은 큰 바다 거친 파도 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서핑의 매력은 ‘쿨’함이에요.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유와 쾌감을 느끼게 하지요.” 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서핑의 매력이다. 순수하게 서핑만을 들여다본 긴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서핑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하나의 문화이자 라이프스타일이다. 서프코드는 그동안 서프보드를 만들고 장비를 판매하는 것은 물론이고 음악, 의류, 공간 등으로 그 영역을 확장시켰다. 이젠 서울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서퍼들이 찾아올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지큐>, <아레나> 등 유명 패션지의 지면도 화려하게 장식했다. 소신대로 밀고 가면 그 어디에 있든 상관없다고 생각한, 그들조차 놀랐다. 그리고 확신했다. 오히려 원도심 한복판에 있기에, 더 멋지고 특별할 수 있었노라고.

 

이제, 그들은 정든 자유공원 언덕을 떠난다. 이달 안으로 서구 가좌동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코스모 40’으로 가게를 옮긴다. 코스모 40은 옛 ‘코스모화학’ 공장 지구에 있는 40번째 동 건물을 탈바꿈한 도시 재생 공간이다. 함께하자는 제의를 받고 1년을 고민했다.
“후회 없이 달렸지만, 우리 메시지를 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서핑 문화가 쿨하고 멋지다는 건 증명했지만, 그 이상을 뛰어넘지 못했지요. 이제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려 합니다.” 김인섭 대표의 목소리에서 열정과 기대감이 느껴진다. 꿈을 찾아 서구 공장 지구로 모인 인천의 젊은이들과 뜻을 모아 더 큰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7년 전 서핑에 뛰어들었던 그때처럼, 모든 게 잘되리라는 예감이 든다.

 

“들어가 봐도 되나? 여기가 뭐 하는 데야?” 자유공원의 어르신들에게 산꼭대기의 서핑 가게는 아직 낯설고 신기한 공간이다. 하지만 ‘그들만의 세상’은 먼지 속에 침잠하던 옛 동네를 서서히 빛나던 시절로 돌려놓았다. 김선홍 이사가 속 깊은 목소리를 냈다. “도시의 매력은 누가 일부러 만든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쌓여가는 거지요”. 중심에서 변두리로 밀려났을지언정, 원래 ‘명당’ 자리였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몰라주었을 뿐이다.
이제, 서프코드가 자유공원 언덕을 떠날 날이 머지않았다. 좋았던 만큼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미련은 없다. 그들이 떠난 빈자리를 누군가 또 다른 이야기로 채워갈 테니. 그걸로 충분하다.

“확신이 있는데, 굳이 서울로 갈 필요가 있나요?”
‘동인천프란시스코’를 떠나 서구 공장 지구로 향하는 서프코드 사람들.
정연철, 황은민, 김선홍, 김인섭(왼쪽부터) 씨

‘동인천프란시스코’여 안녕

자유공원 앞 서프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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