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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개항 136주년

창문 너머, 시간 속으로

정경숙 본지 편집장 |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 도움말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실내건축과 교수

대불호텔 전시관에서 바라보는 개항장
개항장 일대, 창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끝없이 열려 있다.
그 너머로 긴긴 시간을 가로지르면, 내일 새로운 역사에 닿는다.

문(門)은 사적인 공간과 바깥세상을 잇는 통로다. 문으로는 사람과 물건이 드나들고, 창(窓)으로는 공기와 햇빛이 넘나든다. 그 사이로 시간도 흐른다. 문은 그 시대의 역사와 삶의 이야기를 거울처럼 비춘다. 시간의 층이 켜켜이 쌓인 개항장 일대를 걷다 보면, 자꾸만 창문 쪽을 올려다보게 된다. 사라져가는 옛 풍경을 만나는 것이 반가워서, 오래되고 낡은 창문 너머에 누가 살까 궁금해서, 굳게 닫힌 창 안에 어떤 사연이 잠들어 있을까 상상하느라.

01 옛 일본우선주식회사(현 인천아트플랫폼 사무소)
02 옛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
옛 일본우선주식회사는 노란색 타일로 마감됐으나,
1888년 건립 당시 적벽돌 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옛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은 1899년에 지은
의양풍 건축물로, 화강암을 견고하게 쌓아올린 외벽에
장대석을 대어 창을 냈다.
이들 조적식(組積式) 건축물은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수직성을 강조하는 긴 창문을 둔 것이 특징이다.
03 옛 닛센해운(日鮮海運) 빌딩
장식주의적 요소와 모더니즘적 요소가 결합된, 1930년대 근대건축 양식이 인상적이다.
04 옛 일본 제58은행 인천지점 2층 내부
1층은 현재 중구외식업지부 건물로 쓰이고, 2층은 오랜
세월 비어 있다. 외부 벽체와 기둥, 수직 창 등이 옛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05 옛 공화춘(현 짜장면 박물관)
짜장면을 처음 판매한 중국요릿집 공화춘. 1층에 4개,
2층에 8개의 창문이 있는데, 1층 출입문과 창호에는
결원아치를, 2층 창문에는 평아치를 두었다.
06 옛 인천부청사(현 중구청)
대표적인 모더니즘 건축물로, 수평의 긴 띠창, 커튼월(Curtain Wall) 기법의 유리창 등에서 모더니즘 양식이
강하게 표현됐다. 사진은 정문 옆에 난, <원형 창>. ‘옥스아이(Ox Eye)’라고도 불린다.
07 옛 청국영사관 회의청
1910년 세운 건축물로 1970년대 이후 40년 넘게
비어 있다, 최근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주출입문은 6개의 접이문이며, 좌우측에 각각 3개의
창문이 달렸다. 붉은 창문살이 아름답다.

1883년 2월 8일, 제물포항이 열리면서 세상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신문물이 쏟아지고 파란 눈의 사람들과 중국인, 일본인이 몰려들었다. 힘으로 밀어붙인 개항이었다. 바다 건너온 사람들이 산 좋고 물 좋은 응봉산 자락에 터를 잡으면서, 조선인들은 배다리 주변으로 떠밀려야 했다. 그들 나라 양식의 건축물이 이 땅에 세워졌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일본식과 일본 의양풍(儀洋風) 건축물이 여기저기 솟아났다. 그렇게 조용하던 바닷가 마을은 ‘그들만의 세상’이 됐다.
개항장 거리를 걷다 보면 1899년에 지은 ‘옛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현 인천개항박물관)’을 만난다. 차가운 쇠창살이 박힌 창문 너머로 지난 시간을 떠올린다. 이곳은 이 일대 ‘옛 일본 제18은행 인천지점(현 근대건축전시관)’ ‘옛 일본 제58은행 인천지점(현 중구외식업지부 건물)’과 함께 조선의 경제를 쥐락펴락했다. 이들 근대 금융기관은 일본 상인들의 상권을 지원하는 업무를 하고, 일본 영사관의 금고 역할을 했다. 본관과 함께 세워진 창고형 금고 건물에는 단단한 장대석을 위아래로 잇댄 작은 창이 나 있다. 쇠창살이 격자로 나 있어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갈 틈도 없어 보인다. 이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 우리 것을 빼앗아 그들 탐욕을 채웠으리라. 오늘, 쇠창살 사이로 비추는 햇살이 그 날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아프지만, 기억해야 하는 역사다. ‘옛 일본 제58은행 인천지점’은 개항기 근대 건축물 중에서도 옛 창문의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1892년 일본 오사카에 본점을 둔 제58은행 인천지점으로 문을 열었다. 프랑스풍의 절충주의 양식의 건축물로 2층 발코니에 채광을 고려한 창인 인 도머(Dormer)가 나 있다. 좁다란 나무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 닫힌 문을 열면,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정면을 중심으로 좌우에 3개씩 난 수직 창으로 햇살이 가득 쏟아진다. 이 창문 너머로 변함없이, 신록이 돋아나는 아침이 열리고 낙엽 지는 오후가 펼쳐졌을 것이다. 오랜 세월 단절된 공간이지만, 창은 여전히 바깥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건축물은 흘러간 시간을 기억하게 한다. 건물을 지은 자재로 그 시대의 환경을 헤아리고, 축조 기술로 그 시절의 문화와 사회상을 떠올릴 수 있다. 1930년대 개항장에는 ‘옛 닛센해운(日鮮海運) 빌딩(현 선광미술관)’과 같은 대형 건물이 세워졌다. 1932년경 지은 것으로, 인천에 남아 있는 4층 규모의 유일한 근대건축물이다. 철근과 콘크리트 등 상당히 비싼 재료로 수직으로 쌓아올렸는데, 이는 이 일대가 경제의 중심지로 땅값이 높았을 것이라 추측하게 한다. 이 건축물의 가장 큰 특징은 장식주의적 요소와 모더니즘적 요소의 결합이다. 초기 개항기 건축물에서 볼 수 있던 고전주의적 성향의 1층 문과 규칙적으로 네모반듯하게 난 2, 3, 4층의 창문이 대비를 이루며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개항장 일대, 창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끝없이 열려 있다. 닫힌 문일지라도 그 너머 긴긴 시간을 가로지르면, 내일 새로운 역사에 닿는다. 저마다 시간을 품은 창이 건네는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인다.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내일을 열어가는 건 우리의 몫’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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