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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공간 – ⑩ 추억극장 미림

인생은 아름다워

공간은 곧 사람을 의미한다. 숨 쉬고 머무는 자리마다 살아온 시간과 삶을 대하는 태도, 생각이 스며든다. 이번 호에는 기억 너머에서 삶의 영역으로 들어온 소중한 공간을 찾았다. 1957년 천막극장으로 시작한 실버 영화관 ‘추억극장 미림’이다. 그 옛날 ‘할리우드 키드’들은 백발노인이 됐지만, 인생이라는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살아 있는 매 순간 계속된다. 인생은 여전히 아름답다.

 

정경숙 본지 편집장 |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영화 ‘9월이 오면’ 의 한 장면. 자금은 고인이 된 할리우드 스타의 젊은 날에서, 청춘의 날들이 교차된다.

영화를 소비하기보다 지친 마음을 위로받는 느낌이다. ‘추억극장 미림’은 어르신들을 위한 인천 유일의 실버 영화관이다. 동인천역 4번 출구에서 나와 배다리 방면으로 가면, 엘리자베스 테일러, 험프리 보가트, 폴 뉴먼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영화 포스터가 펼쳐진다. 이 극장에선 40~50년 전에 개봉했던 고전 영화들이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미림극장은 1957년, 무성 영화를 상영하는 천막극장 ‘평화극장’으로 그 역사를 시작했다. 가까이 있던 문화, 오성, 현대 극장과 함께 동인천역 뒷동네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영화관이었다. 이들 극장은 흑백 영화처럼 추억 너머로 사라지고, 유일하게 미림극장만 남았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 그 옛날 천막으로 숨어 들어가 까치발을 들고 스크린 너머 세상을 꿈꾸던 ‘할리우드 키드’들은 백발노인이 됐다.
미림극장의 영사기도 꽤 오랫동안 멈추어 있었다. 2004년 7월 29일 상영한 ‘투 가이즈’가 마지막이었다. 물밀듯이 영화를 쏟아내고 소비하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밀려 극장 문을 닫은 것이다. 다행히 2013년 10월 2일, 어르신들을 위한 ‘추억극장 미림’으로 재개관했다. 55세 이상이면 쌈짓돈 2,000원에, 가슴 설레던 청춘의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

지금은 쓰지 않는 필름을 영사기에 걸어보는, 조점용 전 미림극장 영사 기사

“기억도 안 나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 조점용(75) 어르신은 미림극장 깊숙이에 있는 영사실에서 평생 필름을 돌렸다. 그에게 미림극장에서 마지막으로 필름을 만지던 때를 묻자 짧은 답이 돌아왔다. 아차, 싶었다. 1972년, 한창나이에 미림극장으로 와 결혼하고 자식 셋을 낳아 키우며 30여 년을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일생을 바쳐온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극장이 문 닫고 텅 비어 있던 10여 년간, 그는 이 일대로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극장 앞을 지나면 바로인 길을, 수도국산까지 멀리 돌아서 갔다. “극장 문 닫은 모습을 보는 게, 그렇게 싫을 수 없었어. 내 청춘 다 바치고 가족들 먹여 살린 터전이 한순간에 사라졌으니까.” 재개관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기쁨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미림극장은 내 가족이야.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을 다시 만난 거지.”

이제 대부분의 극장에선 작동하기 쉬운 디지털 영사기를 쓴다. ‘추억극장 미림’도 재개관 첫날 ‘사운드 오브 뮤직’을 튼 것을 마지막으로 필름 영사기를 더 이상 돌리지 않는다. “필름을 돌릴 때는 한시도 떨어져 있을 수 없었는데, 지금은 버튼만 눌러 작동시킨다지. 편리하긴 해도 디지털은 필름이 주는 자연스러운 영상미를 따라올 수 없어.” 언젠가 만났던 ‘애관극장’의 최경술(59) 영사 기사도 같은 말을 했었다. 그는 미림극장에서 조점용 어르신으로부터 영사 기술을 배운 제자이기도 하다.
사람의 손으로 하는 일이다. 실수로 스크린이 까맣게 변하기라도 하면 관람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관중석에서 영사기로 ‘엿이나 바꿔 먹으라’고 했어. 허허.” 그래도 관객들은 영화가 다시 나올 때까지 20분이고, 30분이고 기다려줬다. 지나고 보니 다 아름다운 추억이다.

영사실에서 평생 필름을 돌린 시간.
실수로 스크린이 까맣게 변하기라도 하면, 관람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지나고 보니 다 아름다운 추억이다.

‘추억극장 미림’의 시간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보폭만큼이나 느리게 움직인다. 나이 든 영사 기사가 먼지 자욱이 쌓인 추억의 영화를 꺼내어 어둠에 잠긴 스크린에 비춘다. 영화의 장면마다 아름답던 청춘의 날들도 함께 흐른다. 1960, 1970년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통로라곤 극장이 전부였다. 그래도 낭만이 있었다. 연인과 로맨스 영화를 보고 신포동과 동인천 일대 경양식집에서 ‘칼질’을 하면,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 근사한 기분에 젖어 들었다. 그 시절 극장은 서민들의 고된 하루하루를 달래고 살아갈 힘을 주던 희망의 공간이었다.
한 노신사는 좋아하는 명화를 보기 위해 ‘추억극장 미림’을 종종 찾는다. 천막극장 시절부터 발걸음을 했다. “젊은 시절 미림극장에서 보던 영화의 장면 장면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해요. 이 안에서 조용히 영화를 보며 그 시절로 돌아가곤 하지요. 미림극장은 내 마음의 고향이에요.” 스크린 불빛에 반사된 그의 눈시울이 반짝인다.

‘추억극장 미림’은 추억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예술 영화 전용 상영관으로 국내외 독립·예술 영화들을 선보이고, 어르신은 물론이고 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세대가 함께하는 가족 문화 공간’이 오늘 ‘추억극장 미림’의 모토다. 처음엔 그 새로운 모습을 담고 싶었다. 하지만 미림극장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들 눈과 마음에 담기는 건,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아름다웠던 그날이기에. ‘추억극장 미림’은 있는 그대로, 그 존재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추억극장 미림
A. 동구 화도진로 31(송현동, 미림극장)
T. 032-764-8880
H. www.milimcine.com
※ 미생36플랜ㅣ 미림극장에 생명을 36개월간 불어넣어 주세요. 문의 Ⓣ 032-764-6920
영사실에서 전시실로 자리를 옮긴 필름 영사기.(위)
실버 영화관에선 팝콘 대신 건빵, 양갱, 모나카가 제격.(가운데)
시간의 주름이 깊게 팬, 추억극장 미림. 허공의 전깃줄마저 나이테처럼 느껴진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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