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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새로운 대한민국 100년, 그 중심에 인천

뜨거웠던 100년, 더 희망찰 100년

정경숙 본지 편집장

1919년 3월 1일, 암흑 속에서 숨죽여 살던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오후 2시, 서울 탑동공원(현 탑골공원) 하늘 위로 갑자기 피맺힌 함성이 울려 퍼졌다.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로 뛰쳐나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태극기의 물결은 순식간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다.

인천에는 3월 6일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등학교)에서 나라의 독립을 염원하는 불씨가 피어올랐다. 학생들은 3·1운동 소식을 듣고 동맹 휴학을 결정하고, 거리로 나와 시민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눠줬다. 나라 위하는 마음이 불꽃처럼 활활 타올라 인천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3월 8일 곳곳에 독립선언서가 뿌려지고 만세 소리가 굽이쳤다. 만국공원(현 자유공원), 황어장터(현 계양구 장기동), 강화도, 월미도, 덕적도 등 인천 곳곳에 애국의 불길이 솟아올랐다. 황어장터 만세운동에는 600여 명의 군중이 일어섰다. 일본 경찰이 그들 심장에 총칼을 겨누었다. 거리를 가득 채우던 만세 소리는 순간 비명과 울부짖음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강화도에서는 무려 2만여 명에 이르는 군중이 거대한 물결을 이뤘다. 그들은 민족의 자존심이고 희망이었다.

4월 2일 만국공원에서 열린 ‘13도 대표자 회의’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씨앗을 뿌리며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다. 전국 13도의 독립운동가들은 이 자리에서 ‘한성임시정부’를 세우기로 뜻을 모았다. 그리고 4월 11일, 이를 근간으로 역사적인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 선포됐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 중)

100년 전 뜨거웠던 그날과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다. 100년 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이 그토록 꿈꾸었던 오늘. 고귀한 피와 땀이 스민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한다. 더 뜨겁게 더 희망차게, 앞으로 함께할 100년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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