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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아침

시월의 어느 멋진
‘인천 시민의 날’에

글·사진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인천’이란 지명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때는 조선 초기다. 태조는 고려의 흔적을 지우고자 ‘경원부’란 지명을 ‘인주’로 바꾼다. 이어 태종은 15세기 초 인주를 ‘인천군’으로 개칭한다. 인천뿐 아니라 군이나 현에 주(州) 자가 들어 있는 고을은 모두 산(山) 자나 천(川) 자로 고친다. 그때가 1413년 10월 15일이었다.

‘인천 시민의 날’은 1965년 처음 제정됐다. “향토애를 높이고 인천 시민들이 다 함께 하루를 즐길 수 있는 시민의 날을 정하자”는 윤갑로 당시 인천 시장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개항일인 1883년 1월 1일을 기념해 1월 1일로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추워서 공식 행사가 어려운데다 새해맞이로 분주한 시기란 지적에 따라 실질적 개항일인 6월 1일로 정해졌다.

시민의 날이 변경된 때는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한 1981년 7월 1일이다. 이후 10년 이상 7월에 기념식을 했는데 폭염이 오거나 장마가 지기 일쑤여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결국 1993년 인천시사편찬위원회가 인천이란 지명이 탄생한 10월 15일을 제안했고, 이후 지금까지 10월에 인천 시민의 날 행사를 진행해 오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시민의 날 비슷한 게 있었다. 일제는 2월 9일을 ‘인천의 날’로 기념했는데 일본의 러일전쟁 승전일이었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랴오둥(遼東, 요동) 반도를 차지했지만 러시아가 주도한 3국(러시아, 프랑스, 독일) 간섭으로 어쩔 수 없이 반환한다. 복수의 칼을 갈던 일본은 그로부터 10년 뒤인 1904년 2월 8일 뤼순(旅順, 여순) 군항을 기습 공격하는 한편, 한국에 병력을 집결해 하루 뒤인 9일 인천 앞바다에 떠 있던 러시아 함대가 자폭하도록 만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의 야욕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선선한 바람과 겨자 빛깔로 출렁이는 알곡들. 10월은 가을이 본격 시작되는 시기다. 바리톤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란 노래에 나오는 노랫말처럼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계절이 시월이고 가을이다.
이 가을, 인천특별시대 300만 시민시장들이 오는 10월 15일, 55번째 생일을 맞는다. 인천시는 그동안 크고 작은 정책을 시민과 함께 결정해 왔다. ‘살고 싶은 도시, 함께 만드는 인천’ ‘인천愛(애)뜰’과 같은 슬로건이나 광장 명칭 공모에서부터 예산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 애썼다.

20년간 중단됐던 배다리 관통 도로 사업 재개, 10년간 멈춰 있던 월미바다열차 개통 등 오랜 난제들을 해결한 것도 ‘300만 시민이 모두 시장’이란 시정부의 진정성과 철학이 있기에 가능한 결실이었다. 그런가 하면 ‘인천e음카드’를 전국 최초로 시행해 소상공인과 시민 간 소통을 크게 확장시키며 전국적인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시는 앞으로도 쓰레기 매립 문제와 같은 주요 현안을 시민과 논의하며 함께 해결해 나갈 생각이다. 시가 강한 의지로 추진하는 ‘2030 미래 이음 비전’은 시민과 시가 손을 맞잡고 새로운 인천을 건설하자는 ‘협치와 소통’의 결정체다. 우리 삶의 지표가 되는 모든 분야에서 ‘더 많이 살리고 더 튼튼하게 잇자’는 인천 시민들의 미래 행복 지도가 바로 2030 미래 이음 비전이다.
앞으로 10년 뒤 인천 시민들은 더 행복해지고 삶의 질은 눈에 띄게 좋아질 것이다. 이번 인천 시민의 날엔 새 단장한 시청 앞 광장 ‘인천愛(애)뜰’에서 가을 햇살을 받아도 좋을 일이다. 지그시 눈을 감고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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