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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심 재생 공간 – 개항로

100년의 역사와
인천의 콘텐츠를 누리다

최근 중구 개항로의 모습이 달라졌다. 인적이 드물던 거리에 젊은이들이 눈에 띄더니, 평일 저녁과 주말이면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불 꺼진 텅 빈 건물은 뉴트로풍의 트렌디한 모습으로 변신하고, 사람들은 거리를 활보하며 밥을 먹고 차를 마신다. 한때 인천의 중심지였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서서히 저물어간, 유동 인구 ‘제로’에 가까웠던 옛날 거리가 이제는 가족과 젊은이들이 찾는 공간으로 서서히 활기를 되찾고 있다.

 

김윤경 본지 편집장 | 사진 최준근 자유사진가

오래된 산부인과 건물을 개조해 카페로 변신한 라이트하우스.
1930년에 건축된 건물을 문화 카페로 되살린 싸리재.

낡고 오래된 노포와 원도심이란
이미지가 뉴트로 감성이라는 새로운
유행의 선두주자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금 중구 일대는 ‘개항로’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다.

1960년 4월 19일 싸리재.(위) ⓒ LIFE 잡지
1962년 화폐개혁 당시 싸리재에 위치한 조흥은행 인천지점.
(사진 제공 유지우)

제2의 전성기를 준비하는
개항로

지금의 경동사거리에서 애관극장 앞을 지나 배다리 마을로 넘어가는 길목, ‘싸리재’라고 불렸던 ‘개항로’는 1970,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과 사람이 어깨를 부딪치며 다녀야 할 정도로 번화한 곳이었다. 웨딩 숍, 가구, 극장 등 사람이 모일 만한 요소는 모두 갖춰 서울의 명동 못지않은 상권을 이뤘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인천시청이 구월동으로 이전하고, 2000년대 들어 주요 상권이 주안이나 부평 등으로 옮겨가면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동 인구가 전혀 없던 거리로 전락했다. 하지만 지난 2017년 뜻을 함께하는 20명이 모여 동네를 살리는 ‘개항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거리 분위기는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낡고 오래된 노포와 원도심이란 이미지에서 뉴트로 감성이라는 새로운 유행의 선두 주자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금, 중구 일대가 ‘개항로’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다.

인천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한
재생 공간

“세월이 흐르면서 슬럼화가 진행된 개항로가 안타까웠습니다. 초중고를 인천에서 다닌 저는 이곳에 대한 추억이 많거든요. 처음 리바이스 청바지를 산 곳도 이곳이고, 대학교 때 여자 친구와 영화를 보러 온 곳도 애관극장이었으니까요.” ‘개항로 프로젝트’를 이끄는 이창길(42) 대표는 개항로를 옛날처럼 사람이 많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1910년대 건물이 남아 있는 이곳이 개항과 산업화 등의 역사를 거친 하나의 박물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곳이 사라지는 게 싫었어요. 처음엔 혼자 고민하다가 생각과 뜻을 공유하는 친구들에게 얘기하고 또 좋은 사람도 소개받으면서 마음이 같은 스무명이 모이게 됐습니다. 개항로 프로젝트의 시작인 셈이죠.” 건축가, 디자이너, 요식업자, 조경 전문가, 카페 운영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은 각자 돈을 투자해 건물을 사고, 사들인 건물에서 직접 카페, 갤러리, 음식점 등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100년도 더 된 과거 공간을 그대로 유지한 채, 그곳에 현재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채워넣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개항로 프로젝트’를 이끄는 이창길 대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인천만의 콘텐츠

“영국 유학 시절 파티에 갔는데 할아버지부터 젊은이까지 함께 놀더라고요.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한국에서 모든 세대가 어울릴 수 있는 곳은 노포 아닐까요? 노포와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다양하게 혼재되어 있는 곳. 과거와 현재, 옛 거리와 현대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곳. 그것이 인천 중구의 색깔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대표는 노포를 소개하고 근대 문화를 결합한 트렌드 있는 카페나 식당 등을 입주시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거리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작업을 해 나갔다. 노포와 협업하는 경우도 많다. 덕분에 노포에서 제작한 목 간판을 사용하는 가게가 늘어나고, 우리나라에서 쫄면을 처음 만들었다는 광신제면소의 면을 이용한 국숫집이 생겨나고, 1978년도 개업한 인천당의 수제 과자를 제공하는 가게도 문을 열었다. “자고 나면 하루가 다르게 비슷한 가게들이 생겨나지만, 결코 카피할 수 없는 건 바로 세월과 그 안에 담긴 철학이지요. 그래서 인천만의 콘텐츠로 채워나간 겁니다.”

조명과 전구를 콘셉트로 한 ‘라이트하우스’에서는
실제로 전구를 만들었던 기계를 볼 수 있다.(위)
우리나라에서 쫄면을 최초로 만든 광신제면소와 콜라보한 면으로
온면을 만들고 있는 ‘개항면’.(아래)
인문학 강좌, 도시건축학 강의, 그 외 다양한
문화 소모임 활동 등이 이뤄지고 있는 문화 카페 ‘싸리재’와
오랜 세월 인천에 대한 애정으로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박차영 대표.

지역 주민과 상생하는
문화 공간

개항로에서 지역 주민과 상생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갖춰나가자는 목소리는 사실 몇 년 전부터 계속돼 왔다. 2014년부터 경기의료기 건물과 한옥을 리모델링해 ‘싸리재’라는 문화공간 카페를 운영하는 박차영(70) 대표는 단기간에 확 뜨는 핫한 지역으로 상품화되기보다는 인천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지역이라는 걸 먼저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한다.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건 분명 환영할 일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SNS에 올리기 위해서 사진만 찍고 가는 곳이 아니라, 먼저 공간에 대한, 인천에 대한,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개항로에서 문화 창작 공간을 운영하는 정희석(45) 목(木) 조형 작가는 무엇보다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관계 재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역 주민들이 그동안 소외되면서 ‘마음을 많이 다쳤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을 재생이 아니라 관계 재생, 문화 재생이 먼저 필요했던 곳이죠. 이 지역이 오랜 기간 재개발 소문만 무성했는데, 무조건 헐고 새로 짓는 게 아니라 역사적인 가치를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정희석 대표는 ‘잇다스페이스’가 문화를 매개로 작가와
지역 주민들을 연결해 주는 사랑방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말한다.

개항로는 시민들에게 외면받고 장기간 방치됐던 지역이다. 이런 방치가 길어짐으로써 오히려 예전의 모습이 고스란히 살아남았고 다시금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부디 이곳 개항로에 특별함을 지키고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건강한 관심이 모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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