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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크루즈 가는, 그 바다는 행복海

바다 출국(出國), 어색하고 낯설다. 으레 ‘출국’ 하면 공항을 거쳐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줄 알았다. 지난 4월 26일 송도국제도시 끝자락에 자리 잡은 인천항크루즈터미널이 개장했다. 오픈 테이프를 끊자마자 이 터미널에서 역사상 첫 출항한 크루즈선 ‘코스타 세레나(Costa Serena)’호에 몸을 실었다. 인천항 크루즈 역사의 첫 시작을 함께한 것이다. 4월 26일 인천을 떠나 28일 중국 상하이(上海)를 거쳐 30일 일본 후쿠오카(福岡)를 들른 후 5월 1일 부산항에서 일정을 마치는 기행이었다.

글·사진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

인천항크루즈터미널에서의 첫 만남

코스타 세레나가 인천항크루즈터미널에 접안해 있다. 한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덩치다. ‘바다 위의 5성급 호텔’이라 불리는 11만4,500t급 초대형 선박이다. 63빌딩을 눕힌 것보다 긴 길이(290m)에 14층 빌딩과 맞먹는 높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2,800여 명의 승객들은 각 조별로 크루즈터미널에서 출국 심사를 거쳐 선체에 올랐다. 그 모습 또한 장관이다. 이미 배 안에는 1,500명의 승무원이 탑승해 승객들을 맞았다. 한국, 이탈리아, 중국, 필리핀, 인도 등 무려 31개국에서 온 다국적 직원이다. 이탈리아 선사답게 선박 내 분위기는 이국적이다. 빨강 파랑을 섞은 격자무늬 카펫에 그리스·로마 신화를 모티브로 한 장식물이 곳곳에 어우러져 있다.
탑승을 완료했는데 배는 바로 떠나지 않았다. 모든 승객들은 짐 풀기 전에 비상 대피 훈련에 참가해야 했다. 구명조끼를 입고 비상 보트 아래에서 안전 훈련에 임했다. 승객들은 ‘저 노란 비상 보트를 타는 비상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를’ 속으로 빌며 들뜬 마음으로 훈련에 임했다.

100년 전 인천-상하이
정기여객선 운항

뿌웅~. 코스타 세레나는 긴 뱃고동을 한번 힘차게 울리고 서서히 움직였다. 역사적인 그 순간, 눈앞에 흑백 사진 한 장이 펼쳐졌다. 100여 전 개항장 인천의 이 바다에서도 상하이를 오가는 여객선이 뱃고동을 울렸다. 제물포항과 상하이를 정기적으로 오고 가는 배는 세상의 온갖 신기한 물화를 싣고 바다를 가로질렀다. 무역상, 외교관, 선교사 등 이방인들이 이 항로를 통해 개항장 인천으로 들어왔다. 반대로 조선인들은 이곳을 통해 낯선 세상으로 나갔다. 돈 벌러 가고, 공부하러 가고, 때론 변장하고 독립운동을 하러 제물포항에서 배를 타기도 했으리라.
배 위에서 처음 맞는 식사 시간이 됐다. 메뉴는 이탈리아식 정찬이다. 포크를 들 즈음 낯익은 구조물이 창밖 위로 지나간다. 인천대교다. 다리 위로 쉴 새 없이 차량들이 오고 간다. 저들은 공항을 통해 해외로 나가거나 들어왔을 게다. 비행기를 꿈도 꾸지 못한 옛사람들은 바다를 통해서만 나라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해외(海外)’라는 단어를 만들지 않았을까. 잠시 후 거대한 크루즈선은 작은 섬 옆을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대한민국 근·현대 역사의 중심에 있는 팔미도다. 우리나라 최초 등대의 환송을 받으며 먼 바다로 나갔다. 창밖의 인천이 아득해졌다. 비가 내린 후 금요일 저녁 인천의 노을은 붉디붉었다. 말 그대로 ‘불금’이었다.

그대가 잠든 사이의 바다는…

식사 후 숙소(방)로 돌아오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길을 잃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숙소 층에 제대로 내렸는데 방이 있는 통로를 찾을 수가 없다. 통로의 끝에서 끝이 안 보인다. 어느 낯선 동네 골목처럼 길이 이리저리 산발적으로 이어진다. 목에 건 코스타 세레나 카드가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다. 객실 번호뿐만 아니라 정찬 식사 장소 및 시간, 프로그램 등 필요한 정보가 담겨 있는 신분증이자 신용카드다. 크루즈 여행은 선내의 길이 익숙해지고 프로그램도 친숙해질 만하면 배에서 내린다는 말이 있다.
방에 돌아오니 침대 위에 큰 종이 한 장이 놓여 있다. 선상 신문 ‘투데이(Today)’다. 다음날 진행되는 다양한 액티비티 활동과 공연 프로그램, 식사 메뉴 등의 정보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배가 통과하는 현지의 날씨, 파도 상태, 일출·일몰 시간, 최저·최고 기온 등도 담겨 있다. 매일 밤 놀다가 ‘귀가’하면 어김없이 배달되는 신문이다. 세상 모든 신문이 사건 사고 뉴스 없이 이처럼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 기사로만 꽉 차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신문을 펼쳤다.
코스타 세레나의 뱃머리는 밤새 남으로 향했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에 둘러싸인 큰 바다, 동지나해로 접어들었다. 크루즈에서는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도시에 와 있는 마법 같은 일이 매일 일어난다. 선내에서 다양한 시설을 이용하며 즐기는 동안, 혹은 모두가 잠든 밤 사이 배는 다음 여행지로 이동한다. 이 여행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바다’다. 객실 커튼을 열어젖히면 바로 수평선이 펼쳐진다. 파자마 차림으로 테라스에서 너른 바다와 이국적 풍경의 항구를 바라본다. 느긋하게 기지개 한번 켜고 슬슬 밥 먹으러 갈 채비를 한다.

다음날 진행되는 다양한
액티비티 활동과
공연 프로그램, 식사 메뉴 등의
정보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선상 신문 ‘투데이(Today)’

모든 게 공짜,
이미 입장료를 낸 놀이동산

배보다 먼저 해가 상하이에 와 있었다. 인천 떠난 지 이틀 만에 땅을 밟는다. 간략한 하선 절차를 거쳐 기항지 관광을 시작했다. 루쉰 공원(훙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유적을 탐방한 후 유물이 끝없이 이어진 상하이 박물관을 관람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청사를 찾았고 이웃한 중국공산당 일대회지(一大會址)를 둘러봤다.
크루즈선 내에서는 심심하면 반칙이다. 단연코 지루할 틈이 없다. 실내외 수영장, 스파, 디스코텍, 풋살장, 카지노, 극장, 피트니스센터, 예배실 등 다양한 시설에서 즐기는 선상 라이프는 크루즈 여행의 백미다. 수시로 열리는 요가 강습, 댄스 배우기, 패션쇼, 게임 등에 참여하거나 관람할 수 있다. 무엇보다 최대 1,400명까지 수용 가능한 대극장에서는 매일 밤 마술, 오페라 아리아, 뮤지컬, 댄스 등 브로드웨이급 쇼가 펼쳐진다. ‘이걸 육지에서 보면 얼마짜리 공연인데….’ 이미 입장료를 낸 놀이동산이라고 생각하고 망설임 없이 참여해 분위기에 몸을 맡겨본다. 순례자처럼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즐기다 보면 이곳이 육지인지 바다 위인지 느낄 틈이 없다. 배고파도 반칙이다. 끼니마다 뷔페식이 마련되고 정기적으로 정찬이 펼쳐진다. 야간에 출출하면 스낵바에서 샌드위치, 샐러드, 쿠키로 요기를 할 수 있다.

먹통과
멍때리기의 즐거움

한없이 한가하려면 이보다 좋은 공간이 없다. 공해상에서는 먹통이다. 통화, 문자, 인터넷, 카톡 등이 원활하지 않다. 와이파이 눈금이 커지면 육지가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잠시 디지털 디톡스(스마트폰 등 디지털 중독을 해소하는 것)가 되자 햇살 좋은 갑판에서 책을 펼치거나 곳곳에서 멍때리기 풍경이 연출된다.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 후쿠오카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파도가 심했고 안개가 자욱했다. 일본은 바다든 사람이든 저들의 속내를 쉽게 내주지 않는다. 일본 가는 길은 언제쯤이면 안개가 말끔히 걷힐까. 망망대해에 일엽편주처럼 떠 있는 코스타 세레나는 밤새 뱃고동을 울어댔다. 마치 ‘덩치가 지나가니 다들 길을 비켜달라’는 외침처럼 들렸다. 동아시아 바다를 가로지르는 크루즈선에서 거대한 부력과 원심력 그리고 구심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여행이었다.

올해 인천항에서
21차례 크루즈가 뜬다

인천항을 대표하는 새로운 랜드마크이자 골든하버 프로젝트의 첫 작품인 ‘인천항크루즈터미널’이 개장했다. 2013년 1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60개월간 총사업비 1,186억원을 들여 완공한 터미널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22만5,000t급 크루즈선이 정박할 수 있는 길이 430m 부두와 지상 2층, 연면적 7,364㎡ 규모의 청사를 갖췄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인천항 특성을 감안해 최대 13m까지 높이 조절이 가능한 여객 승강 장치와 대형 버스 156대 등 총 200대가 동시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도 설치했다. 올해 전 세계 크루즈 관광객은 2,800만 명을 돌파할 것이며 아시아 시장도 560만 명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9년 인천항크루즈터미널에는 코스타 세레나호 등 대형 크루즈선이 21차례 입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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