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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맛 – ① 강화갯벌장어

강화도의 힘, 강화갯벌장어

인천만의 ‘그 맛’이 있다. 지역 음식에는 고유한 지리적 환경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끝낼 일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인천의 산과 바다, 숲, 갯벌에서 펄떡이고 있을 먹을거리와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맛을 기록한다. 그 첫 번째는 ‘강화갯벌장어’다.

 

정경숙 본지 편집장 |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역사의 바다’ 가르던
고기떼

무수한 시간의 층 사이 한민족의 숨결이 서린 땅, 강화도. 도심에서 한강 물결을 따라 서해로 흘러들면 강화 땅에 다다른다. 강화도는 제주, 거제, 진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강화대교와 초지대교로 육지와 이어지면서 오래전에 ‘섬 아닌 섬’이 됐다.
강화도 ‘더리미 장어마을’은 눈으로 이정표를 보지 않아도 코끝이 먼저 알아챈다. 장어 굽는 냄새가 마을 입구까지 마중 나와 있는 까닭이다.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돌아 5분 남짓 달리면 장어구이 집들이 한데 어우러진 마을을 만난다. 1990년대 한창때는 10여 가게가 성업을 이뤘지만 지금은 절반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여전히 장어가 노릇노릇 맛있게 익어간다.

선원면 신정리 ‘더리미’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그 앞바다는 마치 강 같다 하여 염하鹽河라는 이름이 붙었다. 염하는 예부터 우리나라 해상 교통의 중심지였다. 조선 시대에 삼남 지방에서 온 세곡선稅穀船이 이 물길을 따라 한강을 건너 나라의 곳간을 채웠다. 외세의 침입을 온몸으로 막아낸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개항기 때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 운요호사건1875년을 치른 격전지로, 바다 깊숙이 선열들의 붉은 피가 흐른다.
강과 바다가 마주쳐 굽이치니 바닷고기가 많이 나고 장어, 황복 같은 민물고기도 지천으로 넘쳤다. 특히 비바람이 거세질 가을 무렵엔 마을에 생선 비린내가 진동했다. 지금은 만선의 기쁨을 잊은 지 오래다.

더리미 너머로 보이는 염하.
만선으로 출렁이던 역사의 바다다.

염하 바다에서,
서울 한복판까지

강화도 토박이 한현숙(67) 씨는 40여 년간 이 마을에서 장어구이 집을 하고 있다. 그의 기억 속엔 고깃배들이 만선의 기쁨을 안고 포구로 귀항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40, 50년 전만 해도 이 동네 사람들이 배를 굉장히 많이 부렸어요. 20여 척이 넘었으니까. 지금은 당시 어부들이 저세상으로 가고 배도 팔고 해서 몇 척이나 뜨려나. 고기도 많이 줄었어요.”
1970년대 말, 더리미 포구 앞에 장어구이 집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한 씨가 1980년에 문을 연 ‘더리미집’은 1978년과 그 이듬해 생긴 ‘해변집’, ‘선창집’과 함께 장어마을의 역사를 시작했다. 그는 시댁이 있는 안마을, 인삼밭에서 농사를 짓다 문득 포구를 내다보며 ‘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장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43m²(13평)짜리 작은 가게에서 더리미 앞바다에서 나는 복어, 웅어, 장어 등을 잡아다 팔았다. 처음에 장어는 팔리지 않았는데, 영양가가 높다고 알려지면서 멀리 서울에서까지 손님이 찾아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장어가 더 이상 그물에 걸리지 않았다.
“장사한 지 20년 즈음 됐나, 손님은 느는데 고기는 점점 구하기 힘든 거예요. 한 단골손님이 앞바다에서 장어 나기만 기다리지 말고, 서울 남대문으로 가보라고 했어요. 도시 한복판에 가보니 정말 장어가 있더라고요.”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들이 늘고, 밀물과 썰물 흐름에 장단을 맞추던 고기떼가 사라져갔다. 장사를 해서 먹고살아야 했다. 매일 새벽같이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양식장에서 장어를 사 왔다. 지금은 강화도 갯벌을 막은 축양장畜養場에서 키운 장어로 밥상을 살찌운다. “갯벌이 장어의 살을 더욱 차지게 만든다고 해요. 맛이 훨씬 좋아서 이것만 들여요.”

축양장 둑 위를 거니는 김형근 대표. 바다 너머로 석모도가 보인다.
망이 가득 차오르면, 어부의 마음이 절로 풍요로워진다.
섬사람들에게 장어는 삶의 허기를 채우고,
살아갈 힘을 주는 귀한 물고기다.

갯벌에서의 사투,
75일의 기다림

세계 5대 갯벌을 품고 있는 너른 땅. 끝없이 펼쳐진 검은 해변은, 세상 모든 것을 품에 안아 정화하고 생명을 길러낸다. 강화도 특산품인 ‘강화갯벌장어’는 자연과 인간의 지혜가 빚어낸 귀한 먹을거리다.

‘강화소루지양식장’의 김형근(61) 대표는 30년간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3년 전 경남 창원에서 강화로 왔다. 그리고 강화 토박이인 손위 누이와 지금은 돌아가신 매형이 16년간 운영하던 장어 양식장을 이어받았다. 축양장은 갯벌을 막아 만들어 자연 그대로다. 물이 들고 나는 사이 새우, 망둥이, 게 등 갯것들도 덩달아 이사를 온다. 그 안에 풍천장어로 유명한 전북 고창과 전남 함평에서 들여온 장어를 두 달 이상 풀어놓는다. 먹이는 주지 않는다. 주인장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건 수질과 염도, 온도를 관리하는 일인데, 결코 쉽지 않다. “생물을 다루는 일이라, 하루하루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에요. 한겨울에 처음 강화로 왔는데 하우스에서 키우던 장어가 다 죽어버려서 절망했어요. 이후 ‘장어를 절대 죽이지 말자’는 심정으로 양식에 매달렸지요.”

살아 있는 것들은 참으로 경이롭다. 장어는 환경이 바뀌면 처음엔 움직이지 않다가, 염분 농도에 적응하면서 스스로 먹이를 찾기 시작한다. 그렇게 75일간 갯벌 안에서 사투를 벌인 끝에 다시 태어난다. 적응하지 못한 건 죽고 ‘강한 놈’만 살아남는다. “민물장어를 축양장에 넣고 75일 후에 꺼내면 살이 빠지면서 무게가 15% 줄어요. 죽는 놈까지 더하면 30%까지 손실이 나지요. 하지만 탈바꿈한 장어는 육질에 탄력이 붙어 상품 가치가 높아집니다.” 거친 물살과 갯벌을 휘저으며 단련된 탱탱한 살은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과 독특한 풍미를 낸다.

해가 지는 더리미 포구, 낡은 배들이 지친 몸을 뉘고 잠을 자고 있다. 만선으로 출렁이던 바다는 예전 그대로 흐르는데, 번성했던 과거는 나이 든 어부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세찬 바람이 부는 가을 무렵이면, 염하의 거친 물살을 이기고 살이 도톰하게 찬 물고기들이 올라온다. 예전만은 못해도 이 희망은, 여전히 섬사람들을 살아 가게 하는 힘이다.

바다의 힘이 고스란히.
이 펄떡거리는 생명체에 강화갯벌의 기운이 가득 담겨 있다.

장어, 양을 일으키고 몸을 보하다
건강을 잘 돌본다는 보양保養의 뜻도 있지만 보충한다는 보양補陽의 뜻도 있다. 한의학에서는 장어를
허로虛勞를 보하고 상처 회복에 효과가 있으며 폐결핵 같은 만성 소모성 질환을 치료하는데 효험을 보인다고 기록한다.
특히 본초강목과 동의보감 전음前陰 편에 ‘양을 일으키고 몸을 잘 보한다’고 나와 있다.

갯벌의 힘을 고스란히, 갯벌장어구이

 

근육이 탄탄하게 붙어 식감이 탱글탱글
쫄깃한 장어의 속살이 그대로

 

김옥례(67) 씨는 고인이 된 남편과 함께 19년 전, 강화도 양도면에서 갯벌장어를 키우는 ‘강화소루지양식장’을 시작했다. 지금은 동생이 축양장을 이어받고, 그는 언니와 함께 식당 일을 돕고 있다. 그에 의하면 갯벌장어는 민물장어에 비할 것이 못 된다. 맛이 다르고 질도 다르다. “민물장어는 젓가락질을 못할 정도로 살이 흐물흐물한데, 갯벌장어는 쫀득하고 맛있어요. 비린내도 거의 없지요.” 장어를 기르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배웠다. 강화 갯벌에서 뒤엉켜 자란 장어는 근육이 탄탄하게 붙어 식감이 탱글탱글하다. “천일염으로 간해서 구우면 끝, 요리할 것도 없어요. 그래야 본연의 풍미를 즐길 수 있습니다.” 갯벌장어의 가격은 1kg당 6만9,000원으로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저렴하다. 1kg을 시키면 두세 명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다.

강화소루지양식장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64 Ⓣ 032-937-4236

100년 이어갈 ‘더리미의 맛’

 

20여 가지 특제 소스로 버무려
숯불에 구우면 고소한 냄새가 진동해

 

더리미 장어마을의 터줏대감 ‘더리미집’은 강화소루지양식장에서 기른 갯벌장어를 식탁에 올린다. 자연산 장어도 단골들이 찾으면 특별히 구해다 준다. “예전엔 10월 말이면 장어가 뭉텅이로 그물에 걸려들었어요. 지금도 간혹 잡히는데, 그러면 뱃사람들이 횡재했다며 아주 좋아하지요.” 풍요롭던 더리미 포구를 떠올리며 주인장 한현숙 씨가 옅게 미소를 짓는다. 이 집에선 토실토실 살이 오른 장어를 직접 담근 고추장에 20여 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 특제 양념장에 버무려 내놓는다. 숯불에 장어를 올려 구우면 육질에 자글자글 기름기가 흐르고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강화 순무김치, 유자청을 버무린 강화인삼, 속노랑고구마묵 등 강화 특산물로 만든 반찬도 한상 차려진다. 장어구이를 다 비우고 나면 장어죽이 나온다. 차지고 담백한 맛이 그만이다. 앞으로 100년은 이어가야 할 맛이다. 더리미집은 최근 인천지방중소벤처기업청으로부터 30년 이상 전통을 지켜온 ‘백년가게’로 선정됐다.

더리미집
강화군 선원면 해안동로 1219 Ⓣ 032-932-0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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