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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맛 – ② 남동배

노스탤지어의 맛 남동배

인천만의 ‘그 맛’이 있다. 지역 음식에는 고유한 지리적 환경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끝낼 일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인천의 산과 숲에서 자라고, 바다와 갯벌에서 펄떡이고 있을 먹거리와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맛을 기록한다. 그 두 번째는 바람과 햇살이 키우고 귀한 땀으로 가꾼 노스탤지어의 맛, ‘남동배’다.

 

정경숙 본지 편집장 |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단물 뚝뚝 남동배,
가을이 흠씬 배었네

자연은 철마다 숨 고르기를 할 뿐 호흡을 멈추는 법이 없다. 무더위가 슬그머니 물러선 자리에 한줄기 바람이 비집고 들어온다. 생명이 갈무리하는 계절이다. 한결 너그러워진 햇살과 바람에 들판을 메운 곡식과 과일이 탐스럽게 무르익는다.

 

남동구청 뒤로는 나지막한 산이 드리워져 있다. 회색빛 도심에 펼쳐진 푸른 숲이 눈과 마음에 생기를 돌게 한다. 산은 구월동 끄트머리에서 시작해 수산동, 도림동까지 마을을 감싸며 길게 이어진다. 이들 동네는 밤낮의 온도 차가 크고 바닷바람이 불어와 맛 좋은 배가 자라기에 적당하다. 도림동에서 40여 년간 배를 키워 온 만성농장의 김길환(76) 대표는 ‘남동배’를 “나주 사람도 인정하는 우리 배”라고 치켜세운다.

이 일대엔 40, 50여 년 된 배 농가 30여 곳이 오붓이 들어앉아 있다.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인 덕에 하루하루 솟아나는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햇살과 빗물은 열매를 자라게 하고 바람은 당도를 끌어올린다. 바람이 서늘하게 부는 10월이면 배의 단맛이 최고조에 이른다. 배 수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농부들의 손길이 바빠졌다.

‘땀의 결정체’를 손에 든,
만성농장의 함성천 소장.
남동구 개발 제한 구역은 순도 100%의 자연을 품고 있다.
배 농장 너머로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보인다.

그렇게
농부가 된다

오전 7시, 만성농장. 이른 시간이지만 수확한 배를 선별해서 보관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세 명의 일꾼이 말을 건네기 미안할 정도로 분주히 움직인다. “추석 전에 나갔어야 하는데, 올해는 명절이 일러서 많이 못 팔았어요. 이제야 자라서 거둬들이고 있네요.” 만성농장의 함성천(70) 소장이 수확한 배들을 창고 한편에 쌓아올리며 말한다. 고된 농사로 거칠어진 손이지만, 배를 다루는 손길은 섬세하고 정성스럽다. 열매를 맺기까지 땀 흘린 시간과 그 안에 담긴 애틋한 마음이 전해진다.

그는 3년 전, 이 농장에서 처음 흙을 만지며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내 밭은 아니지만 내 자식처럼 애지중지 배를 키웠다. ‘이만큼 예쁘게 키워놨는데…. 잘 버텨내야 할 텐데….’ 지난달 초 태풍 ‘링링’이 온다는 소식에 결실을 거두지 못할까 마음 졸였다. 떨어져 나뒹구는 배를 봤을 땐 허탈에 잠겼다. “내 땀이 여기 다 스며 있잖아요.”
지금이야 능숙한 손길로 배를 키우지만, 농사꾼으로 살아간다는 건 녹록지 않은 일이다. “‘일을 하고 싶으면 배 농사를 지어라’라는 말이 있어요. 이리 힘든지 알았으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을 거예요.” 눈뜨면 농장으로 향하는 삶이 버거워질 즘 그의 마음을 다독인 건, 자연이었다. 봄이면 순백색 꽃눈이 흩날리고, 가을이면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이 안에서 일하면 아무 생각이 안 나요. 공기부터 달라서 속이 확 트이지요.” 이 순간에도 그는 자연의 들숨과 날숨에 호흡을 맞추며 땀 흘리고 있으리라.

수확한 배를 쌓아올리는 함 소장.
그 손길이 아이를 다루듯 조심스럽다.
배를 수확하는 만성농장 사람들.
결실의 계절이 오면, 농장의 시간은 더 빨리 흘러간다.
땀 흘린 만큼 정직하게 거두며 살아가는 것.
농부들이 바라는 소박한 행복이다.
영일농장의 엄우봉 대표.

이맘때면 하루가 다르게 배가 자란다. 농장 울타리 안, 봉지에 싸여 줄줄이 달려 있는 배들이 한 뼘의 볕이라도 더 쬐려고 목을 늘여 빼고 있다. 싱싱하게 여문 열매를 따 쓰윽 닦아 한입 베어 문다. 차르르~ 물기 어린 단맛이 입안 가득 번진다. 남동배는 물이 많아 시원하고 달디달다. 여기에 특유의 새콤한 배향 사이로 씹는 맛도 좋다. 서걱거리지도 무르지도 않은 아삭함이 딱 알맞다.
햇살, 바람 그리고 사람이 빚어낸 귀한 결실이다. 인천농업기술센터는 지난 2010년부터 배 연구회와 머리를 맞대고 명품 배를 키우는 데 힘쓰고 있다. 토양의 질을 끌어올려 과실의 당도를 높이고 고운 빛깔을 입혔다. ‘탑프루트’ 시범 단지를 운영해 상품성을 높이고, 수출 생산 단지로 키워 과테말라와 대만, 베트남으로 내보내는 성과도 이뤘다.

배 연구회의 일원인 엄우봉(46) 영일농장 대표는 6년 차 농부다. 서울에 있는 IT 기업에 다니다 장인어른이 운영하던 배 밭을 물려받았다. 처음 하는 농사일이 만만치 않고 도시 생활과의 간극을 극복하기도 쉽지 않았다. “‘열심히 일하되 욕심은 부리지 말자’는 자연의 순리를 깨우치기까지 6년이 걸렸어요.” 밤낮으로 배를 연구하고 흙을 만지다 보니 어느덧 농사에 자신이 붙었다. 재작년엔 수확량을 늘릴 생각으로 배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달았다. 아뿔싸. 큰 배가 영양분을 빼앗아 다른 배들을 자라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먹고살 만큼은 열매가 맺었다. 자연은 땀을 배신하지 않았다. “이번 태풍 때도 잘 버텨주었어요. 농장을 둘러싼 산이 비바람을 막아주고 미리 시설을 갖춰놓은 덕이지요. 농사는 하늘에서 정해준다지만, 결국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준다’고 믿습니다.”

 

예전 같으면 한창 출근 중이었을 시간, 아침 햇살을 받으며 밭에 나갈 때면 언제나 마음이 설렌다. 하루하루 튼실하게 자라는 열매를 지켜보면 ‘이 맛에 농사를 짓지’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땀 흘린 만큼 정직하게 거두며 살아가는 것. 도시 한복판의 노스탤지어에서, 농부들이 찾아가는 행복이다.

※ 남동배를 구입하려면 남동농협을 이용하거나, 농장에 직접 방문 혹은 연락 후 택배로 받으면 된다.
만성농장 남동구 도림동 413-11 Ⓣ 032-446-4177
영일농장 남동구 구월동 633 Ⓣ 010-8882-0313
남동농협협동조합 Ⓣ 032-464-1864
인천농업기술센터 Ⓣ 032-427-5959

농장 풀밭 위에 차린
‘신의 선물’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Homeros)는 배를 ‘신의 선물’이라고 극찬했다. 배는 우리나라에서 3,000년 전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다. 삼한시대부터 배나무를 길렀고 한말에는 황실배와 청실배 등의 품종을 재배한 기록이 있다. 지금 우리가 즐겨 먹는 신고배는 일본에서 개량된 품종이다. 인천에서는 수산동과 도림동 일대에서 배가 재배된다. 그 맛을 인정받아 ‘탑프루트’ 마크를 달고, 과테말라와 대만, 베트남으로 수출하기도 했다.

배는 수분이 85~88%, 당분이 10~13%를 차지하며, 유기산, 비타민 B와 C, 섬유소 등이 들어 있다. 특히 펙틴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변비를 예방하는 데 좋다.
배를 고를 때는 둥글고 큼지막하며, 선명한 황갈색에 푸른 기가 없는 것이 좋다. 또 배 고유의 점무늬가 크고 껍질이 두껍지 않은 것이 수분이 많고 달다. 배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통조림, 잼, 배숙 등을 만들어 먹어도 좋고, 고기와 김치 요리에도 궁합이 잘 맞는다.

 

가을이라지만 유난히도 맑은 날,
배 농장 풀밭 위에 ‘신의 선물’로 만든 음식을 차렸다.
그 맛은, 열매가 자라는 동안
스미고 스민 농부의 정성스러운 땀방울에서 시작됐다.

배가 들어간 해물 샐러드

 

배는 식감이 아삭하고 물기가 많아서 시원하게 먹으면 좋다. 해산물과 해초로 만든 냉채류와도 잘 어울린다. 산과 바다에서 난 건강한 먹거리에 싱그러운 드레싱을 곁들여, 가을 영양을 듬뿍 담은 샐러드를 완성했다.

재료 :
대하 10마리, 미역 및 해초 모둠, 오이 1개, 배 1개
드레싱 :
현미식초 4T, 매실청 4T, 레몬즙 3T(1개분) 설탕 2T,
소금 2t, 마늘 25g, 케이퍼 2T
만들기
1 ─ 모둠 해초는 다듬어서 먹기 좋게 자른다.
2 ─ 오이와 배는 도톰하게 채 썬다.
3 ─ 대하는 내장을 빼고 데쳐 편으로 썬다.
4 ─ 드레싱 재료는 고루 섞어 냉장고에 넣어둔다.
5 ─ 모둠 해초와 오이를 접시 아래에 깔고 대하와 배를 올린 후 차가운 드레싱을 얹어 낸다.

시나몬 배숙

 

검은 점이 박힌 하얀 조각배가 예쁘기도 하다. 배숙은 수정과와 함께 대표적인 가을날의 전통 마실 거리다. 배 고유의 단맛에 시나몬의 알싸한 향이 어우러져 감미롭고 개운하다. 궁중에서 즐겨 먹던 귀한 음료로, 찬 기운을 몰아내고 온기를 채우기에 충분하다.

촬영 협조 : 만성농장
재료 :
배 1개, 생강 10g, 팔각 4개, 스위트 시나몬 스틱 2개,
정향, 물 10ℓ, 꿀 6T
만들기
1 ─ 배는 껍질을 벗겨 세로로 8등분한다.
2 ─ 정향은 껍질을 벗겨 배에 꼽는다.
3 ─ 물에 분량의 모든 재료를 넣고 중불에서 20분 정도 끓인다.
4 ─ 배를 너무 푹 삶거나 덜 익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포인트.
요리 진희원 디자인하는 푸드 스타일링 전문가 진희원은 현재 ‘Cook & Styling 실버 스푼’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따뜻한 냄비 하나>, <식사하셨어요? 도시락이 필요한 모든 순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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