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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맛 – ④ 강화 순무

땅에서 캔 알싸함

인천만의 ‘그 맛’이 있다. 지역 음식에는 고유한 환경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끝낼 일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인천의 산과 들에서 자라고, 바다에서 펄떡이고 있을 먹거리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맛을 기록한다.
그 네 번째는 수더분한 강화 땅에서 캔 톡 쏘는 맛 ‘강화 순무’다.

 

정경숙 본지 편집장 |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팽이 모양의 동그란
가을 순무(가운데)와
길쭉한 겨울 순무.(양옆)
민통선 마을 밭에 가득 쌓인
‘평화의 열매’.

강화 북쪽으로 가는 길, 바다는 질펀한 갯벌을 드러낸 채 철책을 두르고 저 멀리 물러나 있었다. 강화읍 월곶리는 민통선 마을이다. 북한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흐르는 임진강과 한강이 한데 어우러져 다시 서해와 염하(鹽河)로 흘러들어간다. 고려 시대 정자 ‘연미정(燕尾亭,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24호)’에 오르면 바다 너머로 북녘땅 황해도 개풍군이 가까이 보인다. 두 갈래로 나뉜 물길, 두 동강이 난 땅에서 한민족의 아픈 역사를 느낀다.

 

마을로 가는 길목, 군인들이 출입을 통제해 긴장감이 흐른다. 이 일대는 도로가 나기 전 논과 밭, 습지가 전부였다. 오래도록 세상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던, 순수하고 은밀한 땅. 그 안에서 희망의 씨를 뿌리고 평화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있다.
‘연미농장’의 황우석(50) 대표는 14년 전, 서울에서 고향으로 와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장무공(莊武公) 황형(黃衡) 장군의 후손이다. 황형은 조선 시대 삼포왜란(三浦倭亂)을 승리로 이끌어 임금에게 연미정과 그 일대 땅을 하사받았다. 그 후손들은 선열이 목숨 걸고 지킨 땅을 일구며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창원 황 씨 사람들이 농사지으며 오붓이 살고 있어요. 동네 어르신들 다 인삼밭에서 일하면서 평생을 보내셨지요.” 부뚜막만 아니면 온 땅에 인삼을 키웠다는 강화. 월곶리에선 현재 인삼보다 순무를 주로 키운다. 식재료로 경쟁력이 높고, 지리적 환경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비가 적절히 내려서 뿌리 작물인 순무를 재배하기 좋아요. 바다와 오염되지 않은 비무장 지대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맛을 무르익게 하지요.”

연미농장의 황우석 대표.
김장철을 앞두고, 쑥쑥 자라난 순무를 캐느라
농사꾼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올해는 과연 잘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늘의 뜻이라면서도, 그는
“농사꾼에게 농사일은 ‘업’이라, 목숨을 건다”고 했다.
결국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을 들이느냐에 따라, 자연은 더 깊고
오묘한 맛을 주고, 결실을 허락한다.
강화풍물시장 풍경.

가을의 끝자락, 기온이 하루아침에 뚝 떨어졌다. 찬바람이 불고 김장철이 다가오면서 순무 수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만9,834m2(6,000평)에 이르는 넓디넓은 밭. 쑥쑥 자라난 순무를 캐느라 할머니 일꾼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몇 시간이고 허리를 숙여 순무를 뽑아내는 고된 일이다. 더구나 알이 실한 놈들만 골라내야 하니 쉽지 않다. 하지만 평생을 밭에서 보내온 베테랑 농사꾼들이 아니던가. 그들의 손길이 지나갈 때마다, 늦여름부터 하늘과 땅의 기운을 먹고 자란 순무가 의기양양하게 자태를 드러낸다.

 

올해 수확량은 예전만 못하다. 태풍 ‘링링’이 지나간 후로 장대비가 내리면서 땅이 단단해져 작물이 뿌리내리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래도 먹고살 만큼은 열매가 맺혔다. “항상 일기예보를 주의해서 들어요. 언제 어느 날씨에 씨를 뿌리고 거두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정해지지요. 농사는 하늘의 영역이에요.”
처음 농사일에 손을 댔을 땐, 쫄딱 망하고 몇 년을 밭에서 눈물지었다. 평생 흙을 만진 아버지의 손길을 이어받으면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전국을 다니며 농사일을 배우고 작물 재배법을 연구했다. 그렇게 10년을 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사람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구나.’ 뿌리 작물은 특히 토양에 민감하다. 땅에서부터 미리 앞날이 정해지고, 햇살과 바람, 빗물을 맞으며 자라난다. 농사꾼은 자연의 순리 안에서 정성과 노력을 더할 뿐이다.

순무는 재배 시기에 따라 봄 순무와 가을 순무로 나뉜다. 가을 순무는 늦여름에 씨를 뿌려 추운 겨울로 들어설 때 거둬들인다. 이때 수확한 순무는 맛이 달고 열매살이 단단하며, 특유의 진한 풍미를 낸다. 비밀은 온도에 있다. 순무는 온도가 낮아지면 추위에 대비해 줄기의 수분을 당으로 바꿔 뿌리로 저장한다. 그래서 여름 문턱과 너무 이른 가을에 수확한 순무는 맛이 맵고 쓰며 몸체가 무르다.
연미농장에서는 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겨울 순무를 재배한다. 가을에 씨 뿌려 겨울을 난 순무는 성장이 느리지만 당도는 매우 높다. 그 모습도 다르다. 꽁꽁 언 바깥 땅에서 따듯한 땅속으로 뿌리를 내리고 내리면서, 몸체가 둥근 모양에서 길쭉하게 변하는 것. “고유한 형태를 바꾸면서까지 살아남는 강인한 생명력에,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북쪽 끝자락, 민통선 마을의 겨울은 빠르게 찾아온다. 영하 5도. 추위에 강한 순무라지만 최대한 죽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온도다. 지난해에는 다행히 큰 한파가 없어서 무사히 열매를 거둘 수 있었다. 올해는 과연 잘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늘의 뜻이라면서도, 그는 “농사꾼에게 농사일은 ‘업’이라, 목숨을 건다”고 했다. 결국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을 들이느냐에 따라, 자연은 더 깊고 오묘한 맛을 주고, 결실을 허락한다.

가을 순무로 만든 김치와
겨울 순무로 만든 차.

“하느님께 맹세코, 다시는 굶주리지 않을 거야.”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남북전쟁 중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순무를 뽑아 먹으며 말한다. 곱게 자란 부잣집 아가씨가 전쟁을 겪으며 주체적인 인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순무의 원산지는 멀리 유럽 서남부의 해안 지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1236~1251)>에 종자가 약재로 쓰였다고 나와 있으며, 강화도에서는 1,000년 전부터 길러 온 것으로 추정된다. 재래종 품종은 백색, 자색, 적색을 띠는데 주로 자색이 많다. 그냥 먹거나 김치, 장아찌 등 각종 요리로 만들어 먹는다.

순무 잎은 무기질과 비타민의 함량이 높으며, 뿌리에는 트립토판과 리신이 풍부하다. 한방에서는 순무가 오장을 이롭게 하고, 몸을 가볍게 하며, 기(氣)를 보해준다고 한다. 조선 시대 <동의보감>에는 ‘봄에는 새싹을 먹고, 여름에는 잎을 먹으며, 가을에는 줄기를 먹고, 겨울에는 뿌리를 먹는 순무는 황달을 치료하고, 오장에 이로우며, 순무 씨를 아홉 번 찌고 말려서 오래 먹으면 장생할 수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강화군은 그동안 단계적으로 순무 우량종자를 농가에 보급하며 순무의 생산성을 높여왔다. 올해는 ‘스마트농업 테스트베드 조성사업’으로 순무 육종에 적합한 온실을 추가로 갖추고, 내년까지 5개의 품종을 등록할 계획이다.

연미농장 www.yeunmi.com
강화군 강화읍 연미정길36번길 48-17 Ⓣ 010-9495-9129
강화풍물시장 강화군 강화읍 중앙로 17-9 Ⓣ 032-934-1318
강화군농업기술센터 Ⓣ 032-930-4137

순무 이렇게 먹어요!

순무는 적당한 크기에 묵직하고, 잎이 푸르고 싱싱하며, 뿌리 부분에 윤기가 나는 것이 좋다. 특히 늦가을에 수확한 순무는 한 알 한 알 양분이 꽉꽉 들어차 조직감이 단단하다. 본재료가 좋으니 이때 순무김치는 누가 담가도 맛있다. 순무는 수분이 적어 소금에 절이지 않고 바로 김치를 담가야 한다. 당도 높은 겨울 순무는, 무말랭이로 만들면 그냥 먹어도 감칠맛이 돈다. 차로 우리 거나 밥을 지어 먹으면, 더 깊고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순무 굴국

한겨울, 따뜻하고 영양가 높은 음식으로 몸의 기운을 추스르자. 통통하고 차진 굴과 순무를 넣고 국을 끓여 바다와 땅의 기운을 한 그릇에 담았다. 찬 기운을 몰아내고 마음속까지 온기를 채우기에 충분하다.
재료
순무 1개, 굴 1봉, 새우 3마리, 마른 표고버섯 3개, 멸치 50g, 다시마 1조각,
생표고버섯 3개, 홍고추 1개, 대파 1뿌리, 액젓 약간
양념(다진 파 1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참기름 1큰술,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만들기
1 ─ 물 1ℓ에 마른 표고버섯, 팬에 구운 멸치, 다시마를 넣고 끓여 육수를 낸다.
2 ─ 생표고버섯은 얇게 채 썰고 순무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3 ─ 홍고추는 반을 갈라 씨를 빼고 속을 긁어낸 다음 5cm 길이로 채 썬다.
4 ─ 대파는 길게 반으로 갈라 4cm 길이로 자른다.
5 ─ 새우는 내장을 제거하고 굴은 소금물에 흔들어 씻는다.
6 ─ 육수를 곱게 걸러 끓이다가 대파와 생표고버섯, 순무를 넣는다.
7 ─ 순무가 익으면 새우와 굴을 넣어 살짝 익히고 홍고추를 넣는다.
8 ─ 양념을 넣고 액젓으로 간한다.

순무 펜넬 샐러드

적자색 열매를 자르면 뽀얀 속살을 드러내는 순무. 흔히 김치나 장아찌로 해 먹는데, 무처럼 다양한 요리에 사용하기 좋다. 달콤 쌉싸름한 펜넬과 알싸한 순무를 버무려 샐러드를 완성했다. 겨우내 무뎌진 입맛이 확 되살아난다.
재료
순무 1개, 펜넬 1개, 연근 1/20개, 라임 3조각, 로즈메리, 애플민트, 오일, 소금, 후춧가루
반죽옷(밀가루 1/2컵, 물 1/2컵, 집간장 1작은술)
양념장(고춧가루 1/2큰술, 집간장 1과 1/2큰술, 들기름 1큰술)
만들기
1 ─ 순무, 펜넬, 연근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2 ─ 양념장 재료를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3 ─ 밀가루를 체에 내려 물과 집간장을 넣고 섞어 반죽옷을 만든다.
4 ─ 연근과 순무에 반죽옷을 가볍게 입혀준다.
5 ─ 달군 팬에 오일을 두르고 채소들을 노릇노릇 굽는다.
6 ─ 소금, 후춧가루로 간한다.
7 ─ 접시에 담고 라임을 얹어 로즈메리와 애플민트로 장식한다.
요리 김혜원 국제한식조리학교 교수, 연미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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