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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공간 ③ 21세기 독립운동가 이호준

진실을 향한, 6,600km의 대장정

공간은 곧 사람을 의미한다. 숨 쉬고 머무는 자리마다 살아온 시간과 삶을 대하는 태도, 생각이 스며든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공 간에 들어가, 그 안에 숨겨진 또 다른 인천을 본다. 그 세 번째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미국 대륙을 자전거로 횡단한 인천대학교 이호준(24) 학생을 만났다. 그의 공간은 오직 자전거뿐. 달리는 내내 좁은 안장 위를 벗어날 수 없지만, 두 바퀴는 진실을 향해 끝없이 나아간다.

 

정경숙 본지 편집장 |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3A프로젝트

100년 후 오늘, ‘자전거 왕’

1920년대 ‘하늘에는 안창남, 땅에는 엄복동’이라는 말이 있었다. 조선인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은 하늘을 날고, 자전거 선수 엄복동 은 땅을 누볐다. 엄복동은 ‘자전거 왕’이라 불리며,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20여 년 동안 전국 대회를 휩쓸었다. 특히 일본 선수들에 맞서 싸워 이기며, 조선인들의 자존심을 높이 고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랬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 정부 100주년을 맞은 오늘, 이 시대의 새 로운 ‘자전거 왕’을 만났다.

인천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 는 이호준(24) 학생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미국 대 륙을 자전거로 횡단했다. 어두웠던 시절의 영웅처럼, 그 역시 자신 만의 방법으로 21세기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가 참여하는 프로젝트의 이름은 ‘트리플 A’. 일본 정부가 위 안부 문제에 대해 과거 잘못을 ‘Admit(인정)’하고, 피해자 할 머니들에게 진심 어린 ‘Apologize(사과)’를 하며, 할머니들과 ‘Accompany(동행)’하겠다는 뜻을 품고 있다. 그는 트리플 A 프로 젝트 4기로, 지난해 여름 미국 서부에서 동부 끝까지 80일간을 쉬 지 않고 달렸다. LA에서 시작해 시카고, 워싱턴 DC, 필라델피아 그리고 뉴욕까지, 주행 거리 총 6,600km. 주요 도시를 거점으로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집회를 열고 사람들과 일일이 만나, 바로잡 아야 할 뼈아픈 역사를 알렸다.

인천국제공항 T2 미디어월 앞에서, 21세기 독립운동가 이호준.
그의 두 바퀴는 진실을 향해, 세계로 나아간다.
미국 횡단 중 잠시 두 바퀴를 멈추고. 그의 공간은 오직 자전거뿐.
달리는 내내 좁은 안장 위를 벗어날 수 없었다.

빗속에서 외치는 진실

그는 평소 위안부 문제가 역사와 정치적 상황을 떠나 상식선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 왔다. 피해자들이 역사의 증인으로 버젓이 살아 있는데, 일본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 지 못하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답은 명확하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푸는 데 힘을 보 태고 싶었다. 그렇게 미국 대륙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나는 여성 인권운동가다. 함께 싸워줘서 고맙다.” 그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1) 할머니를 만 났을 때 건네 들은 첫마디와 주름진 얼굴에 서린 결연한 의지를 잊지 못한다. 끝내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간, 김복동 할머니의 눈빛도 기억에 선명하다. 암 수술을 받은 지 닷새 만에 빗속에서 홀로 시위를 하던 강인한 분이셨다. 이 시대의 용기 있는 어른들이다. 가혹한 역사의 피해자이면서도 같은 상처를 부여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세상 앞에 나서 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할머니들은 작은 체구임에도 거대한 산 같은 존재입니다.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도, 잘 못된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신념으로 세상을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안타까운 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겁니다”. 처음 그가 프로젝트를 시작한 4년 전만 해도 공식적으로 알려진 위안부 할머니는 50분이었는데, 이제 23분만 남았다. 1940년 당시 열네 살이던 소녀 김복동은 일본군에게 속아 위안부로 끌려갔다. 이후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으로 끌려 다니며 고통받다, 1945년 8월 15일 나라를 되 찾고 나서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피맺힌 설움과 눈물을 떠안고 살다, 올해 93세 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사과는 듣지 못한 채로.

미국 서부에서 동부까지 총 6,600km.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한 80일간의 대장정.
“뉴욕 하늘을 밝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응원이 힘과 용기를 준다.

미래를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다

섭씨 40도, 날카롭게 내리꽂히는 태양 아래 숨이 턱턱 막혔다. 돌아갈 곳 은 없다. 폭염에 달구어진 고속도로를 끝없이 달려야만 했다. 도로 옆으로 대형 트레일러가 지나갈 때면 생명의 위협마저 느꼈다. 할머니들을 떠올 리지 않았더라면, 고된 여정의 끝에 이르기 어려웠으리라. 정신력으로 육 체의 고통을 견뎌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도 힘과 용기를 주었다. 시카 고에 이르러서는 한 고등학교의 미국인 교사가 함께 달리기를 자처했다. 국경과 나이를 뛰어넘은 사람들의 진심이 모여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희망을 확인했다. “자전거를 타고 먼 길을 달린다고 해서 지금 당장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세상 사람들 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자동차를 두고 굳이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자전 거를 타는 건, 최선을 다해 진실에 다가서겠다는 우리의 의지입니다.” 올여름, 대한민국의 젊은이 셋이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다시 머나먼 길을 나선다. 100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그토록 원했던 오늘. 하지 만 풀지 못한 숙제가 아직 남아 있다. 더 새로운 대한민국의 100년을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는 그들은, 곧 우리의 미래다.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자동차를 두고 굳이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자전거를 타는 건, 최선을 다해 진실에 다가서겠다는 그들의 의지다.”

LA에서 시작해 시카고, 워싱턴 DC, 필라델피아, 뉴욕까지.
미국 대륙을 횡단하며 바로잡아야 할 역사를 알렸다.
처음 ‘3A 프로젝트’를 시작한 백덕열(27·왼쪽) 학생과 함께.
세계를 향해 역사의 진실을 전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젊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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