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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아침

한국 영화 상영 100주년과 인천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햇살의 조각이 물비늘로 떠다니는 코발트블루의 지중해, 매끈한 보트에서 펼쳐지는 와인 파티, 레드 카펫 위에서 별빛을 발광하는 세기적 배우들. 해마다 5월이면 프랑스 칸(Cannes)의 환영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비현실적인 풍광과 세계 영화의 향연을 오감으로 흡수한 뒤 매년 5월이면 앓는 ‘깐느 열병’이다. 외국어도 미숙하고 영화도 잘 모르면서 겁도 없이 칸 국제영화제 취재에 나선 때는 2003년.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가면 어떻게 되겠지. 가슴에 잔뜩 바람을 넣은 채 프랑스 칸으로 향했다. 14시간 넘어 도착한 프랑스 남부의 작은 휴양 도시, 칸의 검푸른 밤하늘에 빛나던 무수한 별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칸 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를 찾아갔다. 프레스카드를 발급받아야 했다. “인천에서 왔다”고 더듬더듬 말하자 담당 직원이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도시임을 알고 있다”며 선뜻 상급 프레스카드를 내줬다. 초행 취재진에겐 낮은 등급의 프레스카드를 내주는 것이 칸의 관행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인천’ 브랜드로 취재 기간 내내 상급 프레스카드를 금메달처럼 목에 걸고 편안하게 영화를 보는 행운을 누릴 줄이야.
칸 국제영화제는 영화를 처음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의 조국인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거대한 영화시장이다. ‘열차의 도착’이란 최초의 영화가 1895년 프랑스의 한 카페에서 상영될 때 인천에선 ‘애관극장’이 개관했다. ‘협률사’란 이름으로 문을 연 애관극장은 처음 남사당패의 땅재주, 줄타기 같은 공연장으로 출발했다. ‘축항사’란 이름을 거쳐 애관극장으로 탄생한 시기는 1926년이다. 앞서 1909년 인천 중구에 ‘표관’이란 종합문화시설이 있었다. 797개의 객석을 갖고 있던 표관 역시 극단·악단의 공연장이었으나 나중에 영화관으로 바뀌었다. 표관은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졌으며 그 자리엔 ‘키네마극장’이 들어섰다가 1974년 은행 건물이 신축됐다.
키네마와 애관을 비롯해 인천엔 동방, 인현, 중앙과 같은 개봉관과 장안, 세계, 자유, 현대, 미림, 오성, 피카디리 같은 동시상영관이 있었다. 부평 지역에도 부평, 대한, 금성, 백마, 계산, 효성 등 10여 개의 크고 작은 극장이 시민들에게 한두 시간일지라도 고단한 삶을 위무하고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즐거움을 선물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상영은 1919년 10월 27일 서울 단성사의 ‘의리적 구토’로 기록돼 있다. 올해, 한국 영화 상영 100주년이 되는 셈이다. 서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영화관의 대명사였던 단성사는 2012년 영사기를 멈췄다. 그렇지만 125년 된 애관극장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관객들을 맞아주고 있다. 오랜 가족이 곁에 있는 것처럼, 대자본의 멀티플렉스 틈바구니에서 존재해 준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행복하고 고마운 일인지.
영화 ‘극한직업’처럼 인천이 로케이션 촬영지로 주목받는 이유는 애관극장 같은 근현대 문화유산이 즐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천영상위원회가 지원한 촬영 건수가 2013년 78건에서 지난해 138건으로 2배 가까이 는 것만 봐도 영화인들의 인천 선호도는 충분히 증명된다. 하늘(공항)과 바다(항만),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는 인천이란 도시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영상 인프라의 대부분을 갖고 있는 서울과 가깝다는 것도 상당히 유혹적이라고 영화인들은 입을 모은다.
인천은 지금 영상 제작자들에게 더 큰 선물을 준비 중이다. 개항장의 근대 유산을 활용한 관광객 유치와 오래된 것을 부수지 않고 리모델링하는 ‘도시재생’에 뛰어든 것이다. 재개발·재건축이 아닌 재생을 통해 인천은 더 살기 편하고, 더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한국 영화 상영 100주년, 인천은 지금 최고의 영상 도시로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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